
"21세기는 문화 경쟁력이 국가 경쟁력"이라는 말이 도처에서 상용된다. 그러면서 누구나 스페인 빌바오의 성공사례를 들고 있다.
19세기 탄광으로 부를 누리다가 그 산업이 기울면서 점차 퇴락한 스페인 북부의 조그만 마을 빌바오에 구겐하임이라는 미술관이 들어서면서 도시가 새로운 모습을 갖추게 됐고, 전 세계에서 미술관을 보려는 관광객이 몰려들어 도시가 새로이 부흥을 맞았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렇게 간단하게 요약된 성공담의 배경에 대해서는 많은 부분을 간과하고 있다.
우선 도시재생계획에 대한 부분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채 미술관 얘기만 하는 것이 그것이다. 빌바오는 과거의 전통을 담고 있는 부유한 마을이었지만 도시 중앙을 관통하는 강줄기를 따라 고급 맨션을 지어 새로운 주거환경을 제공하는 한편 컨벤션센터를 지어 외부 유동인구를 유입하고, 고급호텔ㆍ레스토랑ㆍ콘서트홀 등을 함께 계획한 대규모 도심재개발의 일환으로 미술관 건립이 논의됐다.
또 빌바오 성공담에서 간과되고 있는 것은 구겐하임 미술관이라는 최고의 미술관이라는 점이다. 구겐하임 미술관은 1950년대부터 뉴욕에 개관, 세계 현대미술계를 이끄는 핵심 미술관의 하나로 방대한 양의 소장품을 배경으로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는 미술관이기에 피레네 산맥속의 오지에 미술관을 열어도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프랭크 게리라는 세계적인 건축가가 설계하고 천문학적인 비용이 투자된 메머드급 프로젝트였기에 가능했다. 금속으로 만들어진 한 송이 꽃과 같이 찬란한 건물도 인상적이지만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건물이 늘 그렇듯이 이 미술관에는 천문학적인 예산이 들어갔다.
즉 어느 조그만 도시에 덜렁 미술관 하나를 만들었더니 갑자기 문화도시로 부상해 전세계적인 각광을 받고, 유명세를 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전에 도시의 주거와 상업, 컨벤션, 문화, 랜드마크적 요소, 세계를 대상으로 한 마케팅 효과 등을 치밀하게 계획해 이뤄진 성공 스토리인 것이다.
특히 문화도시라는 측면에서 19세기 파리를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19세기 중반 나폴레옹 3세는 오스만 백작과 함께 좁은 진창길들이 얽히고설킨 파리 시내 전체를 대대적으로 재정비하기로 결정했다. 오스만 백작은 나폴레옹 황제의 승리를 기념해 만들어진 개선문과 루브르 박물관을 도시의 두 중심점으로 정하고 이 두 점을 자로 대고 금을 긋듯이 샹젤리제를 만들었다. 또 두 점을 기준으로 정확히 삼각형을 이루는 꼭지점에 오페라좌를 건축하고 대로들을 만들어 도시를 정비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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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고 있는 파리 시내의 바둑판형 도로와 도시개발 발전축이 파리시청도, 대통령궁도, 관공서도, 대규모 건물도 아닌 역사를 담고 있는 루브르, 개선문, 오페라좌 삼각축을 중심으로 결정하였다는 점에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파리는 이후에도 퐁피두센터(미술관과 일반 도서관), 라빌레트(과학관), 국립도서관 등 중요한 문화시설을 건립해 시민들의 창조적인 문화생활을 제고하고 도시를 발전시켰다.
그러니 우리가 이제 와서 빌바오에 열광하면서 "잘 지은 미술관하나가 도시를 먹여 살린다"고 열광하는 것은 성공적인 문화도시로 발전한 핵심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오히려 파리처럼 런던, 바르셀로나, 시카고, 뉴욕 등과 같은 역사적인 대도시들이 변화하고 발전하는 데에 문화적인 목표가 어떠한 기능을 했는가를 면밀히 분석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시카고가 왜 빌딩 숲속 한 복판에 야외공연장을 만들고, 바로 옆에 대형 조각물과 미디어 아트 작품을 설치한 공원을 만들었을까를 말이다. 이는 문화시설에 대한 막대한 투자가 시카고의 문화적 아우라를 향상시켜 도시의 또 다른 랜드마크로서 어떠한 기능을 하게 되었는가 등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시금석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