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박 꼬스차 우림건설 카자흐스탄 알마티지사 직원

"카자흐스탄에서 한국기업에 다닌다고 하면 다들 출세했다고 하죠."
카자흐스탄에서 아파트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우림건설 알마티지사에는 러시아어와 한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친근한 외모의 우즈베키스탄인이 있다. 총무부에서 근무하며 꿈을 키워가고 있는 고려인 4세 박 꼬스차(30·사진)씨가 그 주인공이다.
훤칠한 키에 구김없는 성격으로 회사에서 인기가 많다는 박씨에게서 과거 얘기를 듣다보면 고려인들이 겪은 삶의 애환과 중앙아시아의 변화상이 고스란히 읽힌다. 그의 증조할아버지는 일제의 수탈에 러시아로 옮겨가야 했고 할아버지는 사할린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됐다.
당시 20만명의 고려인이 화물열차에 실려 낯선 곳으로 떠나야 했다. 박씨의 할아버지는 우즈베키스탄에 정착해 황무지를 개척하며 삶의 기반을 마련해야 했다. 할아버지의 굵은 땅방울 덕분에 아버지는 학교 선생님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안정된 생활도 오래 가지 못했다.
1991년 우즈베키스탄이 소련으로부터 독립했을 때는 또다시 고단한 삶을 살아야 했다. "직장을 잃은 아버지는 돈을 벌기 위해 러시아로 농사지으러 가야 했고 어머니는 중국에서 들여온 옷을 시장에 내다 팔거나 러시아로 일하러 가는 사람들을 상대로 국수면발을 만들어 팔았습니다."
우즈베키스탄 수도 타슈켄트 인근의 고려인 마을에서 1980년에 태어난 박씨는 10대 시절에 이같은 혼란한 사회상을 경험하며 자랐다. 타슈켄트동대학교 동양학대학에서 경제를 전공한 뒤 방직공장에 취업한 것은 부모의 고생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벌이가 썩 좋지 않았다.
그가 카자흐스탄으로 건너간 것은 이 때문이다. 카자흐스탄은 2000년대들어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기회의 땅으로 인식됐다. 한국기업이 많이 진출하고 있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우즈벡 옷감 만드는 공장에서 일했는데 60-70달러 정도를 받았습니다. 지금은 그때보다 10배를 더 받습니다."
그는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을 묻는 질문에는 "한국기업의 기술력은 이곳에서 최고로 손꼽힌다"며 "한국기업에서 오랫동안 일하며 실력을 키워 가족들과 행복하게 사는 것이 꿈"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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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 고려인과 결혼해 딸 아리나를 두고 있는 그는 요즘에는 한국을 방문하고 싶어한다. 그의 아내가 드라마 '올인'에서 본 제주도 경치에 흠뻑 빠져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취업한 친구도 그에게 한국에 관해 좋은 얘기를 많이 했다고.
"우림건설은 물론이고 한국기업들이 카자흐스탄에서 좋은 결실을 맺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