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차 부도 직후 컴퓨터 납품 업체가 찾아와 노트북을 다 뜯어가더군요. 가뜩이나 힘든데 이런 일을 겪고 나니 가슴 한 구석에 남아 있던 오기마저 약해지는 느낌입니다."
최근 채권단 워크아웃 체제에 들어간 한 중견건설업체의 한 차장은 며칠 전 기자와 만나 "외환위기 이후 10여 년 만에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건설업체는 두 번째 1차 부도를 모그룹의 지원으로 가까스로 모면하고 최근 채권단 채무상환유예에 들어간 상태다. 그는 "워크아웃에 들어간 뒤에 (노트북에 대한) 잔금 납입을 수차례 약속했지만, 납품 업체는 '중고로 팔아서라도 손실을 줄여야 한다'며 컴퓨터를 다짜고짜 회수해 갔다"고 전했다. 그는 "그동안 거래를 통해 쌓아온 신뢰도 있는데..."라며 쓴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이어 "부도 소식을 접했을 때도 이런 느낌은 아니었는데, 막상 비품 거래업체에서 찾아와 '회사가 망하네 안망하네'하며 컴퓨터까지 뜯어가 버리고 나니 한동안 직원들은 망연자실한 상태일 수 밖에 없었다"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일말의 희망이라도 잡아야 한다"며 이를 악물어 보지만, 막상 하루하루 예기치 못했던 일들을 겪다보면 순간순간 찔끔찔끔 눈물이 난다.
최근 자금난을 이기지 못하고 법정관리를 신청한 다른 중견건설업체의 한 직원은 최근 공공연히 이직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 회사 입장에서도 직원들의 이직 활동을 눈감아 주는 상황"이라며 "본격적으로 다른 직장을 구하려면 본연의 업무는 거의 불가능한 상태"라고 말했다. 보다 적극적으로 구직을 하기 위해 자신의 이직 활동을 감추기보다는 외부에 이를 알리고 다녀야 하는 그의 자존심은 분명 천 갈래 만 갈래다. 건설업체로의 이직을 포기하고 아예 다른 업종으로 옮기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후 중견건설업체들이 도미도 도산위기에 처하면서 해당 업체 직원들은 심리적 공황 상태로 내몰리고 있다. 이들을 만날 때마다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솔직히 난감할 때가 많다. 그래서 지면을 빌어서 외친다. '건설역군들이여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