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학번은 왜 하우스푸어가 됐나

90년대 학번은 왜 하우스푸어가 됐나

지영호 기자
2011.07.15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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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하게 앞세대 뒤쫓다 수도권 2차 폭등 때 매입

"제 또래의 부부들이 빚에 많이 허덕이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인천 A지구 아파트에 사는 주부 박모(35)씨는 몇달 전부터 입주자들과 분양 건설사를 상대로 소송을 준비하다가 비슷한 연배의 입주자들이 많다는 것에 새삼 놀랐다. 절반 가까이가 30대였다.

입주자들은 표면적으로 아파트 하자 문제와 불공정 계약 문제를 제기했다. 일부 가구에 결로가 생기고 균열이 가는 문제와 입주 당시 샤시 시공에 특정업체가 공사를 진행하도록 시공사가 밀어줬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니 분양가격의 일부라도 돌려받는 것이 목적이었다. 대출 이자로 생활고에 시달리는 박씨가 시위와 소송에 동참한 이유였다. 건설사가 미분양 물량을 털어내기 위해 최근 분양가의 20%를 깎아서 판매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상 가능성이 있어보였다.

박씨는 흔히 알려진 하우스푸어다. 그는 3년 전 2억5000만원을 은행에서 대출받아 4억원짜리 33평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이어지는 스토리는 잘 알려진 대로다. 아파트 가격은 제자리걸음인데 대출금리는 시나브로 올랐다. 아파트 분양계약으로 인해 그는 매달 이자 갚기에 벅찬 인생으로 전락했다. 어떻게 해서든 보상을 받겠다는 것이 시위와 소송을 준비하는 30대 주부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통계청 가계금융조사의 지난해 가계부채 총액을 살펴보면 30대 가구주의 부채는 5632만원으로 30대 미만의 3배에 이른다. 반면 자산에서 부채를 뺀 순자산 부분에서 30대는 1억5519만원을 기록하며 20대를 제외하고 최저액을 기록하고 있다.

이 자료를 토대로 현대경제연구원이 분석한 <하우스푸어의 구조적 특성> 보고서를 살펴보면 30~40대 가구주의 주택대출 부담이 가장 크게 나타난다. 40대 중 21.5%가, 30대 중 20.1%가 하우스푸어로 집계됐다. 또 수도권 거주자 중 17.2%(비수도권 5.0%)가 하우스푸어였다.

보고서는 하우스푸어를 주택을 한채만 보유하고 거주주택 마련을 위해 대출을 받고 있으면서 원리금 상환으로 가계 부담을 느끼고 가계 지출을 줄이고 있으면서 가처분소득 대비 원리금 비중이 10% 이상인 가구로 정의했다. 한편 전국적으로 하우스푸어는 108만4000가구, 374만4000명으로 전체 가구수의 10.1%다.

◆20대, 주택 구입에 목매지 않겠다

지난해 한 인터넷 포털의 부방(부동산 토론방)에 누리꾼이 올린 글이 이슈가 됐다. 자신을 20대라고 소개한 이 누리꾼은 "앞으로 주택 구입은 절대 고려치 않겠다"며 "지금 대출을 왕창 받아서 폭탄돌리기를 하고 있는, 다음 매수자를 찾고 있는 투기꾼님들은 20대에게 그 폭탄을 넘겨주실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마시라"고 글을 올렸다. 이어 그는 기성세대를 향해 "그 대출 왕창 낀 집폭탄을 가지고 장렬히 자폭해 주시면 된다"고 글을 맺었다.

반응은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반나절 만에 조회수 1만5000개에 170여개의 댓글이 달렸다. 언론에 노출되는 기사와 맞먹는 파급력이었다. 이 글에 대한 추천과 응원글이 줄을 이었다. 현재 20대가 바라보는 주택시장의 문제점과 기성세대의 주택관을 정확히 꼬집었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그렇다면 20대가 언급한 집폭탄을 안고 자폭할 세대는 누가 될까? 김재영 MBC 전 PD수첩 PD가 쓴 책 <하우스푸어>를 보면 자폭 세대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책은 "부동산 투기를 주도한 40~50대가 절대적인 다수를 점하고 있지만, 30대의 주력이라고 할 수 있는 90년대 초중반 학번의 상황이 열악해 보인다"고 진단했다.

◆왜 90년대 학번인가

김 PD는 90년대 초중반 학번들이 2005~2006년 수도권 2차 폭등기 때 주로 주택시장에 뛰어들었기 때문에 하우스푸어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한다. PD수첩이 조사한 판교1단지 휴먼시아 매입자 통계를 보면 30대의 근저당 설정비율은 80.7%로 가장 높은 수치를 타나냈다.

김 PD에 따르면 이들은 2000년 부동산 붐이 일기 시작했을 때 사회 초년병 시절이었는데, 이들은 충분한 경제력을 갖추지 못한 채 무리하게 50~60대가 만들어 놓은 부동산 불패신화를 따라갔다는 것이다. '이러다가 영원히 집을 살 수 없을지 모른다'는 초초감과 '나도 부동산 투자의 혜택을 보겠다'는 탐욕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반면 90년대 후반 학번 이후는 부동산 투기 붐을 피할 수 있었다. 이들은 아파트 가격상승 시기 연령 면에서나 여건 면에서 주택 구입을 고민할 때가 아니었다. 2005~2006년은 이들 대부분이 20대였고, 30대 초반까지 노총각 노처녀란 인식이 희석되던 시기였다. 게다가 '88만원 세대'로 대표되는 2000년대 학번은 취업 걱정에 주택 구입을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다.

부동산 붐의 혜택도 누리지 못하고 88만원 세대의 빈곤으로 인해 하우스푸어 행 막차를 타게 된 90년대 초중반 학번. 이들의 위기가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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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영호 산업2부장

'두려울수록 맞서라' 처음 다짐을 잊지 않는 기자를 꿈꿉니다. 2026년부터 산업2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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