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도 포기한 최저가낙찰제 "왜 확대하나?"

선진국도 포기한 최저가낙찰제 "왜 확대하나?"

이군호 기자
2011.11.18 07:03

국회·국토부 확대 유보 움직임 불구, 기재부 강행 의지…건설업계 반발 심화

내년부터 최저가낙찰제 대상공사를 현행 300억원 이상에서 100억원 이상 공공공사로 확대하려는 정부 방침을 놓고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국토해양부는 권도엽 장관까지 나서 공개석상에서 최저가낙찰제 확대를 유보해야 한다고 밝혔고 국회도 대상공사 확대 저지를 위한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해 놓고 있지만 주무부처인 기획재정부는 강행 의지를 꺾지 않고 있다.

건설업계는 최저가낙찰제 확대가 부실시공 위험을 가중시키고 지방 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각 지역 중소 건설사들을 부도로 내몰 수 있는 개악이라며 확대 연기를 요구하고 있다.

대한건설협회 한창환 정책본부장은 "최저가낙찰제의 경우 선진국 사례를 보더라도 예산절감 효과는 없고 시공품질에 문제가 많다는 게 입증됐다"며 "특히 최근 건설경기가 최악의 상황이고 100억~300억원 발주 공사 상당수가 지역건설사 물량이란 점에서 무조건적인 확대는 부작용만 양산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저가낙찰제, 무엇이 문제인가?"

건설업계는 최저가낙찰제가 지난 1962년 첫 도입이후 부실시공 등 논란으로 폐지와 재도입만 7차례나 반복해온 불완전한 제도인 만큼 정부가 판단을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표적인 부작용으로 우선 정부 예산 낭비가 꼽힌다. 예산 절감을 위해 제도를 도입했지만 오히려 최저가낙찰제로 인해 덤핑 수주가 만연, 시공물의 총생애주기(설계-시공-유지관리) 측면에서 시공 품질 저하로 인한 부실시공 증가로 이를 복구하는데 추가비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실제 미국, 일본, 영국 등 선진국들은 예산낭비를 이유로 최저가낙찰제를 적용하지 않고 있다. 김명수 가톨릭대 교수는 "최저가낙찰제 하에서는 고품질 성과물을 합리적으로 얻을 수 없는데다, 궁극적으로 재정 집행의 비효율성을 초래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일자리 감소와 산업재해 증가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저가수주로 공사비 중 노무비가 부족해지면서 저임금 외국인근로자와 비숙련 노동자를 고용하다보니 내국인 일자리가 줄어들고 산업재해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2006년 최저가낙찰제가 500억원 이상에서 300억원 이상 공공공사로 확대된 이후 △2007년 9만5040개 △2008년 3만5451개 △2009년 3만6302개의 내국인 일자리가 없어진 것으로 추정됐다. 지난 2009년 공공공사 산재다발현장(재해율 상위 10%현장) 21개소 가운데 최저가낙찰제 적용현장은 90%인 19개소에 달했다.

김용수 중앙대 교수는 "최저가낙찰제를 적용한 공사 현장은 노무비와 안전시설 설치비용을 삭감하고 무리한 공사시간 단축을 유도함으로써 건설노동자들의 산업재해 위험을 높이게 된다"며 "이런 상황에서 대상공사를 확대하는 것은 산재를 더욱 늘리는 우를 범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특히 최저가낙찰제 확대로 지역 중소기업의 수주가 어려워져 건설산업 비중이 높은 지방경제를 옥죄고 부도업체를 양산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중소건설사들의 주요 일감인 추정가격 100억원 이상 300억원 미만 중소형 건설공사는 전체 공공공사 물량의 10%인 4조원에 달한다.

24조원을 투입한 4대강살리기 사업에서도 1억원 이상 공사를 한 건도 수주하지 못한 중소건설업체가 29%에 달할 정도로 건설경기가 최악인 상황에서 이 물량을 대형건설사들이 수주할 경우 중소건설사들이 설 기반이 없어진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여기에 최저가낙찰제 확대로 부도 건설사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다. 대한주택공사 시절 최저가낙찰제로 발주된 아파트 건설공사를 다수 수주했던 우정건설, 동산건설, 신성건설, 신창건설, 남양건설, 금광기업, 성지건설 등은 현재 부도가 났거나 법정관리 중이다.

지역을 기반으로 한 중소건설사가 무너질 경우 자재·장비산업, 서비스업 등 전후방 연관산업에 연쇄적으로 파급돼 지방경제는 더 악화될 수밖에 없다.

◇"최저가낙찰제 대안은 없나?"

건설업계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지역중소업체의 수주영역인 300억원 미만 공사는 최저가낙찰제 확대시행을 철회하고 300억원 이상 공사에 대해선 '최고가치(Best value) 낙찰제'를 도입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최고가치낙찰제는 단순히 가격으로만 낙찰자를 선정하는 것이 아니라 가격과 공사수행능력(시공경험·경영상태·시공평가결과), 공사관리능력(품질·안전·환경·하도급)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낙찰자 선정방식이다.

특히 문제가 되고 있는 최저가낙찰제는 성과를 면밀히 검토해 계속 시행할지 여부와 폐지 등을 결정하자고 제안했다. 이와 관련 영국 정부는 감사원 주도아래 지난 1994년부터 5년간 최저가낙찰제 성과를 검증, 예산낭비 문제를 확인하고 2000년부터 최저가낙찰제를 폐지했었다.

조배숙 민주당 최고위원은 "부실공사·저가입찰·산재유발 등의 부작용을 가져오는 최저가낙찰제는 근시안적인 공사비 절감정책으로 추가비용과 국민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품질, 기술력, 입찰금액, 유지관리비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최고가치낙찰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최고가치낙찰제도는 미국이나 영국 등에서 활용되는 선진입찰제도로 앞으로 이들 국가와의 자유무역협정(FTA) 등 건설시장 개방 대응에도 유리하다"고 덧붙였다.

다만 '최고가치낙찰제'가 발주기관의 능력이 전제돼야 하는 점을 감안해 단계적 확대가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밝혔다. 최민수 건설산업연구원 건설정책연구실장은 "최고가치낙찰제의 원활한 운영에 필요한 조달기반이 조성되기 전까지는 현행 최저가낙찰제 대상인 300억원 이상 공사에 대해 최고가치낙찰제로 전환·운영하는 방안이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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