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저는 영혼을 도둑맞은 감정평가사입니다"

[기자수첩]"저는 영혼을 도둑맞은 감정평가사입니다"

송학주 기자
2014.09.01 16:05

"저는 전업주부로서 아이 둘을 키우면서 상상 이상의 피나는 노력으로 30대를 보내면서 감정평가사가 됐습니다. 40대에는 입시생인 아이들조차 내팽개치고 명예로운 감평사의 길을 걷고자 나름 최선을 다했습니다. 감평사 자격증은 엄마와 아내의 자리를 팽개치고 이뤄냈던 가족 모두의 희생이 담긴 소중한 결과였습니다.(중략)

십년이 지나 50대인 지금, 저는 이 자격증을 버리는 것이 저의 명예를 지키는 길이란 마음으로 농사꾼의 길을 가고자 합니다. 표준지 공시지가는 수십년간 감정평가사들의 모든 업무의 근간입니다. 이 업무에 참여하는 모든 평가사들은 차가운 가을·겨울 두 계절을 반납하고 정확한 현장조사를 위해 전국 방방곡곡 발품을 팔고 수많은 밤을 지새워 왔습니다.(중략)

그런데 감평사 고유의 업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표준지 조사평가업무가 예산 편성의 문제라는 이유를 들어 수십년간 조사 평가업무의 기틀을 만들고 발전시켜온 주역인 감평사들의 의견 한마디 묻지 않고 현장경험 한번 없는 공무원들의 탁상행정으로 흔들어 대고 있습니다. 쇠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이 황당하고 이 업무에 바친 그간의 심혈이 쓰레기더미에 내던져 진 듯이 비참하고 감평사로서의 인생이 부정당하고 능멸당하는 치욕을 느낍니다."

50대의 한 여성 감정평가사가 "저는 영혼을 도둑맞은 감정평가사입니다"란 제목으로 보내온 글이다. 최근 국토교통부와 한국감정원이 공시지가 산출 근간이 되는 표준지 조사업무를 기본조사와 정밀조사로 이원화해 예산을 절감하는 방안을 추진하자 이에 대한 의견이다.

절감된 예산이 고스란히 감정원으로 흘러가게 되는 것도 문제다. 국토부에서는 절감된 예산과 감정원의 증액된 예산이 '공교롭게(?)' 맞아떨어진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감정원에서 제도 개편을 건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피아'(국토부+마피아) 논란과 함께 국가 예산을 농단한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정부 출연기관에 해당하는 감정원은 그동안 대주주인 정부를 등에 업고 영업활동을 벌여왔지만 2000년 이후 업계에 대형법인이 생기면서 어려움을 겪었고 국토부가 감정원에 계속 낙하산 인사를 내려 보내면서 국피아 유착이 심해졌다. 현 서종대 원장을 비롯해 감정원 원장은 2004년 이후 국토부 출신이 장악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2004년 이후 감정원은 감정평가사 업무를 이관받기 시작했다. 예산규모로 따지면 426억원 상당이다. 일련의 사건들을 보건데 최근 감평사들의 표준지 공시지가 조사업무 '보이콧'이 단지 '제 밥그릇 챙기기'일 뿐이라고 폄하하기엔 뭔가 석연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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