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X파일]중개사들 "집주인 심기 건드리기 어려워 일일이 명시 못해"
"문제있으면 집주인이 싹 다 고쳐줄거에요. 괜한 걱정 안해도 돼요."
임대차 거래를 해봤다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말이다. 예비 세입자들에게는 어쩌면 서면 계약서에 적힌 다른 조건들 보다도 더 믿고 싶은 얘기다.
집주인 대다수는 임차인과 별문제없이 지내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대부분 임대차 계약을 체결할 때 확실히 짚고 넘어가지 않았거나 중개 알선한 공인중개사의 말만 믿고 맡긴 경우다. 심한 경우 임차인이 보증금 전부를 날리기도 한다.
통상 쓰이는 계약서는 계약 물건의 주소지를 비롯해 보증금, 계약금, 중도금, 잔금 등 비용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어 간편하지만 구체적인 법적 권리까지는 확인할 수 없다. 때문에 세입자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놓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지적.
이를 해소하기 위해 법무부는 지난해 7월 국토교통부, 서울시, 전문가 등과 함께 '주택임대차표준계약서'를 마련해 배포했다.
새로 만든 표준계약서는 당사자나 중개대상물에 대한 내용뿐 아니라 △권리 순위 △장기수선충당금 반환 청구 규정 △묵시적 갱신 규정 △확정일자 날인 △임차권등기명령 제도 등을 명시해 임차인의 권리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계약 전 집 상태를 점검할 수 있도록 해 관리·수리 부분에서의 갈등도 줄일 수 있도록 했다. 임대인 보호 규정도 있다. 임대기간 종료 후 임차인이 계속 거주할 경우 여전히 차임지급 의무가 있다는 내용 등이다.
물론 이같은 표준계약서 만으로 집주인과 세입자간 갈등을 완벽히 해소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양측의 권리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마찰 요소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법무부는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이 표준계약서는 실제 계약 현장에선 찾아보기 힘들다.
오랜기간 한국공인중개사협회의 부동산정보망 케이렌이나 사설 부동산정보망에서 배포해온 계약서를 사용해 왔기 때문이다. 익숙하고 편리하다는 이유에서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 관계자는 "아무래도 컴퓨터 프로그램에 몇 가지 내용만 입력하면 쉽게 계약서를 만들 수 있어 기존에 쓰던 계약서를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면에는 표준계약서 자체가 임차인의 권리만 강화돼 있어 공인중개사들이 집주인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사용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한 공인중개사는 "집주인을 바로 앞에 앉혀두고 난방이나 상·하수도, 전기 등 세세한 사항들을 하나하나 명시하기 힘들어 (표준계약서 사용을) 꺼린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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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은 집주인 눈치보기 탓에 계약시 중개대상물 정보를 임차인에게 해야 하는 '확인설명' 과정도 원칙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공인중개사들은 설명했다.
또다른 공인중개사는 "하나하나 짚고 가면 집주인들이 기분 나빠한다. 중요한 사항들은 특약으로 뭉뚱그려 적고 보통은 구두로 '다 알아서 해줄 것이다'라고 얘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