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 ④공공임대의 역설
![[서울=뉴시스] 김명년 기자 = 30일 서울 시내 아파트 단지가 보이고 있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8월 넷째 주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전주 대비 0.16% 상승했다. 전셋값도 0.11% 오르며 매매·전세가격이 동반 상승세를 이어갔다. 2026.08.30. kmn@newsis.com /사진=김명년](https://thumb.mt.co.kr/cdn-cgi/image/f=avif/21/2026/09/2026090313242011788_1.jpg)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A씨(30)에게 공공임대주택은 '그림의 떡'이다. 지방에서 올라와 대학 등록금 대출을 갚고 월세와 관리비, 생활비를 내느라 모아둔 자산은 많지 않다. 하지만 급여명세서상 소득은 공공임대 기준을 웃돈다. 소득만 보면 지원이 필요 없는 계층이지만 통장 사정은 여전히 사회초년생에 가까운 셈이다.
A씨는 "서울에서 월세와 관리비를 내고 나면 지방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와 실질적인 가처분소득 차이가 크지 않다"며 "1인 가구 대상 임대주택은 물량도 적은 데다 소득이 높으면 후순위로 밀려 사실상 당첨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실제로 쥔 돈은 없는데 이용할 수 있는 주거복지 제도도 없다"고 토로했다.
현행 공공임대의 모순은 반대편에서도 나타난다. 쌍둥이 출산을 앞둔 B씨(38)는 소득과 자산 기준을 충족해 이달 청약 접수가 진행되는 장기전세주택Ⅱ(미리내집)에 지원할 수 있지만 보증금 때문에 신청을 포기했다. 디에이치 방배와 청담 르엘 등 강남권 신축 아파트의 보증금이 9억~12억원에 달해 현재 보유한 자금에 더해 약 4억원을 추가로 대출받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B씨는 "당첨되더라도 수억원을 대출받아 이자까지 감당하기는 어렵다"며 "소득·자산 기준은 충족하면서 고액 보증금을 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결국 부모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가구가 유리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3일 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SH)의 제51차 장기전세주택 입주자 모집공고를 분석한 결과 전체 1877가구 가운데 보증금이 10억원을 초과하는 물량은 7개 단지, 171가구다. 서초구 래미안퍼스티지 전용면적 84㎡의 보증금은 13억8840만원으로 가장 높다. 신청자에게 적용되는 기본 총자산 기준인 6억6200만원의 2배가 넘는다.
소득 기준을 넘는 A씨는 신청 단계에서 막히거나 후순위로 밀리고 기준을 충족하는 B씨는 보증금을 감당하지 못해 입주를 포기한다. 소득과 자산을 중심으로 짜인 현행 기준이 실제 주거비 부담과 자금조달 능력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최근 미리내집 입주 현장에서 중산층까지 아우르는 보편형 공공임대 필요성을 강조했다. 오 시장은 "저소득층에게만 임대주택이 배정돼야 한다는 데 대해서는 철학을 달리하는 움직임이 시작됐다고 생각한다"며 "중산층까지도 이용 가능한 공공임대주택이 우리나라에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정한 소득은 있지만 축적한 자산이 부족한 청년과 신혼부부에게도 주거 사다리를 제공해야 한다는 취지다.
다만 공공임대 공급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입주 대상부터 넓히면 지원이 절실한 취약계층이 밀려나거나 우량 공공임대가 중산층을 위한 '로또 주택'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다양한 소득계층이 좋은 입지에서 함께 거주하는 소셜믹스가 필요하더라도 한정된 재원으로 보증금 10억원 이상을 동원할 수 있는 가구까지 지원하는 것이 타당한지는 별도로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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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취약계층에 대한 두터운 배려가 전제돼야 중산층까지 공공임대 지원을 확대할 수 있다"며 "현재는 취약계층의 주거 상황이 악화되고 있는데도 공공임대 공급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공급 대상을 왜, 누구에게 확대하는지에 대한 원칙이 불분명한 상태에서 대상 계층부터 넓히면서 10억원이 넘는 공공임대가 등장했다"며 "우선순위를 다시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중산층 공공임대의 성패는 대상 확대에 앞서 공급 기반을 얼마나 두텁게 마련하느냐에 달렸다는 평가다. 취약계층의 주거 안전망을 충분히 확보한 뒤 입주 대상은 넓히되 소득과 자산, 주거비 부담에 따라 지원 수준을 달리하지 않으면 보편형 공공임대가 또 다른 '로또 주택'이나 고가 임대로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