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가 되니 책 선물을 많이 받습니다. 새로운 다짐으로 한해를 시작하자는 '덕담'도 듣습니다. 최근 만난 한 은행원은 지난해말부터 화제가 된 '블랙스완'(Black swan)이란 책을 소개합니다. 그러면서 올해도 '흑조의 해'가 되지 않을까 우려합니다.
'백조'하면 으레 '하얀 새'를 떠올립니다. 호주의 '흑조'가 발견되면서 이런 통념이 깨졌지요. 흑조는 '예측 불가능성', '엄청난 충격'의 대명사가 됐습니다. 금융위기의 한 복판에 선 이 은행원은 "흑조가 사방을 휘젓고 다닌다"고 비유합니다.
그는 외환위기 시절 홍콩지점에서 근무한 경험을 꺼냅니다. 신용위기로 아시아 시장이 죄다 망가져 달러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외국계 은행에서 만기가 차지 않았는데도 대출 상환을 채근했습니다.
결국 현금 대신으로 10%나 손해 보고 중국채권을 가져갔다고 합니다. 이후 그는 틈나는 대로 우량 채권을 사들였습니다. 만일을 대비하기 위한 포트폴리오인 셈이지요. 하지만 또다시 터진 금융위기 앞에 속수무책이었습니다.
'리먼 사태'로 우량 채권 값도 60%까지 떨어진 탓입니다. '화재'에 대비해 소화기를 잔뜩 쌓아 놨는데 '지진'이 난 격이지요. 그는 "과거 경험과 정보는 큰 의미가 없어졌다"고 하소연합니다. 다만 미래를 예측하고 리스크에 대한 민감성을 키우는 게 '흑조시대' 생존법이라고 단언합니다.
이는 '키코'(KIKO)에 적용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듯 싶습니다. 최근 책임 소재를 두고 은행권과 기업들이 서로 '으르렁'대고 있습니다.
급기야 '법원행'이라는 '막장'까지 왔습니다. 기업들은 불완전 판매, 은행에 유리한 구조 등을 거론합니다. 몇몇 업체는 키코의 효력을 일시정지하는 가처분 신청을 받아냈지요.
은행은 기업의 탐욕 탓으로 돌립니다. 일부 업체의 경우 몇년간 키코 덕분에 짭짤한 수입을 거뒀다고 쏘아 붙입니다. 은행이 소송에서 이기더라도 '평판'이 땅에 떨어져 '상처뿐인 승리'가 될거라고 내심 걱정도 합니다.
돌아보면 은행에도, 기업에도 키코는 '흑조'였던 셈입니다. 지난해 초까지만해도 경험치에 비춰 환율이 하향 안정세로 갈 거란 관측이 우세했습니다. 때문에 누구도 키코의 잠재 리스크를 돌아보지 못했습니다.
'흑조의 해'. 우울한 전망입니다만, 금융권도 기업도 새겨 들을 부분이 있습니다. 모두들 리스크 관리와 미래 예측 능력을 키우는 한 해가 되길 바라며, '블랙스완'의 첫 페이지를 펼쳐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