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공정·출혈경쟁… 퇴직연금이 불안하다

불공정·출혈경쟁… 퇴직연금이 불안하다

김성희 기자
2009.11.16 10:00

[퇴직연금제도 긴급점검]<1>성장여력 크지만 꺾기·역마진 판매 부작용

[편집자주] 2005년 12월 국내에 처음 도입된 퇴직연금제도. 은퇴연령은 낮아지고 평균수명은 길어져 노후준비가 절실한 상황에서 공적연금을 보완하고 근로자의 수급권을 충족시키기 위해 도입된 기업연금제도다. 그러나 현재 퇴직연금제도는 당초 예상보다 저조한 가입률로 활성화되지 못하고 금융권간 과열경쟁으로 시장이 혼탁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업과 근로자의 퇴직연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데다 기업이나 근로자가 받게 될 혜택도 크지 않은 점이 원인으로 분석된다. 올해로 도입 4년째를 맞은 퇴직연금제도의 실태를 긴급점검하고 개선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퇴직연금제도가 도입된 지 4년째인 올 9월말 현재 퇴직연금 적립금은 전 금융권을 합쳐 9조1047억원으로 파악됐다. 가입 근로자는 148만명으로 5인 이상 사업장 근로자의 19.4%에 불과하다. 퇴직연금을 도입한 기업수도 6만2268개로 5인 이상 사업장의 12.0%로 매우 낮다.

기업규모별로도 편차가 크다. 종업원수가 500인 이상인 대기업의 퇴직연금 가입률은 31%인데 반해 10~29인의 소기업은 11%에 불과하다.

현재 퇴직연금시장의 성장속도는 당초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퇴직연금제도가 도입되기 이전 여러 기관들이 예상한 2010년 퇴직연금시장 규모는 45조~69조원이 될 것으로 추정했으나 현실은 9조원대에 머물고 있다.

따라서 퇴직연금시장은 앞으로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미래에셋퇴직연금연구소는 2010년이 되면 퇴직연금 가입자수가 233만명으로 늘고 2015년에는 385만명, 2020년에는 471만명이 될 것으로 추정했다. 근로자의 퇴직연금 가입률은 퇴직보험이 폐지되는 2011년까지 연평균 50%씩 상승하다 2011년 이후에는 완만한 상승세를 탈 것으로 내다봤다.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도 2009년 12조원에서 2015년엔 78조원으로 늘고 2020년에는 149조원이 될 것으로 추정했다.

이처럼 큰 규모로 성장할 퇴직연금시장이지만 현재 퇴직연금제도는 많은 부작용과 문제점을 안고 있다.

◇불공정 가입권유 심각=9월말 현재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를 금융기관별로 살펴보면 은행권이 4조7770억원으로 52.5%를 차지하고 있다. 생명보험이 2조6586억원으로 29.2%를 점유했고 증권은 12.5%(1조1380억원), 손해보험은 5.8%(5311억원)로 나타났다. 퇴직연금제도가 도입되기 전 퇴직보험을 판매해왔던 생명보험사들이 퇴직연금제도가 도입되자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은행이 퇴직연금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은 광범위한 영업망과 함께 기업을 대상으로 대출업무를 취급하는 우월적 지위를 적절히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보험연구원이 지난 10월 퇴직보험을 퇴직연금으로 전환한 314개 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퇴직연금 사업자를 변경한 기업 중 21.4%인 51개 기업이 금융기관의 불건전 가입권유 행위가 있었다고 응답했다.

불건전 가입권유 행위는 조건부 가입권유 행위로 △대출만기를 연장하는 조건 △우대금리와 대출거래 등 기존조건을 유지하는 조건 △신규대출 허용조건 △만기도래 회사채의 연장조건 △종업원들에게 우대금리로 신용대출을 해주는 조건 등으로 퇴직연금 가입을 권유한 경우를 말한다.

이러한 불건전 가입권유 행위를 금융회사별로 조사한 결과 전체 51건 중 은행이 46건, 보험사가 3건, 증권사가 2건으로 은행권의 불공정 영업행위가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조사됐다.

실제 지난해부터 은행의 퇴직연금 시장점유율은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특히 지난해 11~12월에 일부 은행의 경우 급격한 시장점유율 상승세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유사한 시기에 해당 기업의 여신과 관련된 퇴직연금계약이 있다 하더라도 기업이 자발적으로 퇴직연금을 가입했다는 확약서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아 위규행위로 처리하기엔 곤란하다는 것이 다른 금융권의 주장이다.

따라서 은행의 불건전 영업행위 발생 가능성에 대해서는 상시 모니터링 제도를 운영하고 감독체제를 지속적으로 강화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금리 인상·수수료 인하 경쟁 치열=퇴직연금시장에서 퇴직연금 사업자들이 제공하는 원리금보장형 상품의 금리는 시장의 실제금리보다 평균 2~4%포인트 높은 고금리상품이 제공되는 등 출혈경쟁이 심각한 상황이다.

고금리 상품 제공은 가입자 입장에서는 단기적으로 유리한 측면이 있으나 중·장기적으로는 퇴직연금 사업자의 경영부실을 초래하고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없어 결과적으로 퇴직연금시장의 건전한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퇴직연금제도 도입 초기에는 은행의 '정기예금' 상품과 보험회사의 '이율보증형보험', '금리연동형' 상품이, 지난해 상반기에는 증권회사의 '원리금보장형 ELS' 상품이 대표적인 고금리 상품으로 시장을 혼란케 했다. 다행히 최근 들어 금리경쟁에 따른 퇴직연금 사업자들의 손익악화로 금리경쟁이 다소 완화돼 시장실세금리보다 2~4%포인트 높은 상품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퇴직보험과 퇴직일시금신탁이 본격적으로 퇴직연금으로 전환되는 올 연말부터 금융권역간 금리경쟁이 다시 불붙어 또다시 과당경쟁이 벌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수수료 인하 경쟁도 문제로 지목된다. 퇴직연금제도가 시행된 이후 금융권역 구분 없이 운용관리 및 자산관리 수수료 수준은 지속적으로 인하되다가 최근에서야 다소 진정되는 기미를 보였다.

시장규모가 확대되면 일반적으로 수수료가 인하되는 것이 자연적인 현상이고 가입자에게 유리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시장선점을 위한 역마진성 수수료 인하 경쟁은 퇴직연금 사업자의 경영부실과 서비스 질의 저하로 이어져 결국은 가입자의 권익을 저해하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운용관리 및 자산관리 수수료는 퇴직연금 사업자의 주된 수익원이며 수수료 수준의 결정은 자체 손익분석 등을 통해 자율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다른 퇴직연금 사업자로부터 이전받은 퇴직연금에 대해 초년도 수수료를 면제하는 것은 가입자간 형평성에 어긋나는 것인 만큼 수수료 체계를 개선해야 할 것으로 지적됐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관련 기사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