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IT 강국 착각 버려라

[광화문] IT 강국 착각 버려라

채원배 금융부장
2011.04.22 07:31

'IT 강국 코리아' 언제부터 우리의 뇌리에 박힌 말이다. 당국자들은 다른 건 몰라도 정보기술(IT)만큼은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라고 자부했다.

그러나 최근 농협의 전산 장애 사태를 보면 우리가 과연 IT강국인지 의심이 든다. 3000만 고객을 가진 금융사가 전산 장애가 발생한 지 열흘이 지나도록 복구를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농협은 22일까지는 복구를 완료하겠다고 했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소비자들은 많지 않아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농협이 복구 약속을 공개적으로 해 놓고 어긴 적이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고객의 신뢰를 잃어버린 것이다.

일각에서는 전산장애 후 농협이 보인 태도에 대해 도쿄전력의 판박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사태가 터진 후 감추는데 급급하고, 매일 말이 바뀌고, 어디서부터 손을 봐야지 모를 정도로 시스템이 엉망이었기 때문이다. 농협은 이번 사태에 대해 입이 열개여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IT강국 이미지가 농협 때문에 흠집 났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의 IT가 다 훌륭하고 좋은데 비단 농협의 보안시스템만 문제였을까.

이에 대해 "그렇다"고 자신있게 말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농협의 전산장애 후 만난 시중은행 임원들은 농협의 전산시스템과 농협의 태도를 한결같이 비판하면서도 자기 회사 시스템이 최고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최고라고 얘기하는 순간 해커의 공격대상이 된다"는 말로 얼버무렸지만 누구 하나 자기 회사 시스템을 100% 확신하지 못했다. 인터넷뱅킹의 안전성을 위해 공인인증서에다 각종 복잡한 절차를 갖췄는데도 말이다. 오죽하면 "부자들은 인터넷뱅킹을 하지 않는다"는 말까지 나올까.

비단 보안시스템만의 문제는 아니다. IT 강국이라는 자만에 빠져서인지 IT 전반적으로 문제가 적지 않아 보인다.

지난해 청와대를 출입하면서 대통령의 해외순방 취재차 세계 여러 나라를 다녀봤다. 선진국부터 우리보다 한참 못한 개발도상국까지 가봤는데, 거기서 느낀 점은 '우리는 결코 IT 강국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우리보다 못 사는 나라도 무선인터넷망이 잘 깔려 있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나라의 무선망을 제대로 활용하지 않고 유선만을 고집한다. 단적인 예가 프레스센터다.

해외순방 취재를 가면 기자들이 묵는 호텔에 프레스센터를 설치하고 유선 인터넷망을 연결한다. 무선으로 인터넷을 해도 되는데도 불구하고 무선을 유선 인터넷망으로 바꾸는 별도의 작업을 진행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진다.

가장 빠른 인터넷 속도를 자랑하던 우리나라는 전국적으로 유선망을 다 깔고 이것을 전세계에 수출할 수 있다고 큰 소리쳤지만 다른 나라들은 유선을 건너뛰고 바로 무선으로 갔다.

와이파이가 전세계 곳곳을 누빌 때 독점적 지위를 누리던 우리의 거대 통신사들은 유선만 고집하다 뒤늦게 와이파이망 구축에 나서고 있다. NHN 등 공룡 몇개 업체가 국내 인터넷시장을 독식하면서 소프트웨어 개발은 처지고 있다. '인터넷 속도 세계 1위'라는 우리 IT의 현 주소다.

농협의 전산장애를 계기로 우리의 IT정책을 다시 한번 돌아봐야 한다. "왕년에 IT 강국 해봤는데…"라는 말을 하지 않으려면 'IT 강국'이라는 그 착각부터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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