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검은머리 외국인(?) 은행장 하영구
"매주 아이 얼굴을 한 번밖에 보지 못할 정도로, 올들어 거의 매일 야근하고 있는데 돌아오는 것은 비용 절감과 인원 감축에 대한 압박뿐입니다."
한국씨티은행 한 지점에서 근무하는 김 모 차장(40·여)의 하소연이다. 그녀를 더욱 지치게 하는 건 '일할 맛이 통 나지 않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씨티은행은 지난해 역대 최대 수준의 실적을 올렸지만 미국 씨티그룹은 올해 오히려 비용 절감을 요구했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비크람 판디드 씨티그룹 최고경영자(CEO)은 "한국은 비용절감과 구조조정의 대상이 아니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한국씨티은행은 마케팅비, 광고비, 복리 후생비 등 줄일 수 있는 것은 모두 줄이라고 지시했다.
이 과정에서 직원들은 하영구 행장에 대해 강한 불신과 불만을 드러냈다. 임직원들의 방패막이가 돼 줘야 할 행장이 본사의 거수기 노릇만 하고 있어서다. 한미은행과의 합병 후 실적면에서 이렇다 할 성적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하 행장은 씨티 본사의 대변인 노릇을 자처하면서 직원들로부터 '외국인 은행장'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SC등 다른 외국계 은행과 달리 한국인 은행장임에도 직원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고 본사의 지시대로 움직이는 것은 매한가지기 때문이다.
하 행장은 최근에도 "구조조조정은 없다"고 했지만 이 말을 믿는 직원들은 많지 않다. 본사의 지시에 따라 언제든 말 바꾸기를 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 행장의 원칙 없는 행보는 이미 여러 차례 목격됐다. 하 행장은 지난해 12월 씨티그룹이 전 세계에 4500명을 감원하겠다는 방침에 따라 한국씨티 전 직원의 2%인 100명을 감원하겠다고 공표했다가 내부 반발에 부딪쳐 철회했다. 올해 6000만 달러의 비용 감축을 미국 그룹 본사로부터 주문 받으면서 구조조정 카드를 다시 만지작거렸지만 고배당에 따른 여론 악화 등의 부담감에 또 다시 철회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하 행장의 임기가 1년 이상 남았음에도 벌써 레임덕에 걸린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미 직원들 사이에서는 차기 은행장에 대한 얘기가 공공연히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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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행장이 '금융권 최장수 CEO'라는 명예를 쌓아가는 동안 직원들의 불신과 불만은 곪을 대로 곪았다. 지금 하 행장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본사의 입맛 맞추기가 아니라 커져만 가는 직원들의 반감을 완화시키는 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