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5월12일, 야당이던 영국 노동당 당수 존 스미스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그 당시 영국 총리이던 보수당의 존 메이저는 의회에서 그를 추모하는 연설을 했다. "우리는 항상 음료수를 함께 마셨는데 때로는 차를, 때로는 '차가 아닌 다른 음료'(?)를 마셨다. 그런 자리에서 우리는 업무적인 사안을 넘어서는 다른 여러 주제에 대해서도 토론을 나누곤 했다."
당 대표라는 게 없는 미국에선 대통령이 여야 개별 의원들을 직접 만난다. 아버지 조지 부시 대통령은 의회의사당 지하 실내체육관에서 열리는 의원들의 핸드볼 경기에 꾸준히 참가했다. 또 운동을 좋아하는 여야 의원들끼리 친목모임인 '체육관 저녁'(Gym Dinner)에도 빠짐없이 나갔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지난달 16일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만나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의 영수회담을 제안했다. 박 대통령은 "알았다"고 했지만 아직 영수회담에 대한 움직임은 없다. 박 대통령은 지난 3월17일 이후 4개월 넘게 문 대표와 만남을 갖지 않고 있다.
박 대통령이 영수회담에 신중한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박 대통령은 야당인 한나라당 대표 시절인 2005년 9월7일 노무현 당시 대통령과 영수회담을 했다. 이 자리에서 고 노 전대통령은 박 대통령에게 "비판만 하지 말고 한번 (내각을) 맡아서 해보라"고 연정을 거듭 제안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연정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씀을 꺼내지 않는 것으로 알고 가겠다"고 버텼다.
득실은 분명했다. 노 전대통령이 불을 지핀 '대연정론'은 힘을 잃었고, 박 대통령은 강인한 '지도자'의 이미지를 한층 더 굳혔다. 박 대통령의 뇌리에 영수회담은 대통령은 밑지고 야당 대표는 남기는 장사였다.
문제는 현행 국회선진화법 아래에서 야당의 협조 없이는 어떠한 핵심 국정과제의 달성도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손해가 걱정된다고 미루는 게 능사일지 의문이다.
박 대통령과 문 대표 둘이, 또는 김 대표까지 셋이 수시로 만나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며 박 대통령의 최우선 목표인 노동개혁을 비롯한 현안을 담판짓길 기대하는 건 무리일까? '차가 아닌 다른 음료'(?)를 곁들이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