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보는세상]

지난 20일 오전 10시. 서울 명동 은행회관 1층 로비에서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이하 금융노조)이 '총파업 1차 결의대회'를 열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하영구 전국은행연합회장의 얼굴엔 수심이 서렸다. 오전 11시30분부터 같은 건물 16층 뱅커스클럽에서 아시아 중견 공무원 초청 오찬간담회가 예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이날 오찬간담회는 기획재정부가 지난 11일부터 22일까지 진행한 '아시아 중견 공무원 금융정책 초청 세미나' 프로그램의 하나로 은행연합회가 올해 처음으로 진행했다. 캄보디아, 라오스, 말레이시아, 미얀마, 필리핀, 태국, 베트남, 몽골,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 아시아 13개국 금융정책 담당 과장급 공무원 24명에게 국내 금융정책 경험을 전수하는 자리였다.
오전 10시에 시작한 결의대회가 길어질 경우 외국에서 국내 금융산업을 배우러 온 손님들이 뜻하지 않은 광경까지 목격할 수 있다는 우려에 은행연합회측은 노심초사했다. 금융노조측에 사정을 말하고 결의대회 일정을 조정해달라고 요청할지 고민할 정도였다.
다행히 결의대회는 오전 11시 이전에 끝나 외국에서 온 손님들은 수십명이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금융노조가 '(성과연봉제) 가이드라인 폐기, 사측 단협 안건 철회'를 요구하며 은행회관 1층에 마련한 천막농성장은 그대로 외국 손님들에게 노출됐다.
외국 손님들은 이 천막이 무슨 용도로 쳐져 있는지 오찬간담회를 진행한 은행연합회측에 묻지 않았다고 한다. 혹시 외국 손님이 이유를 물어봤다면 하영구 회장을 비롯한 은행연합회 임직원들은 어떻게 설명했을까. 열심히 일해 성과가 좋은 사람에게 돈을 더 주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돈을 덜 주는 방안을 만들었는데 은행 노조원들이 이를 반대해 천막을 치고 농성을 벌이고 있다고 설명했다면 외국 손님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천막 농성을 하는 사람들이 평균 1억원이 넘는 연봉을 받는 은행원이고 이들의 연봉이 올해 일한 성과와 상관없이 내년에도 일정 정도 오른다고 설명하면 그들은 믿어줄까.
성과연봉제는 조직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당근'이지 '채찍'이 아니다. 노조에서 주장하는 임금을 깎기 위한 방안도 아니고 '쉬운 해고'를 위한 제도는 더더욱 아니다. 은행연합회는 지난 21일 '민간은행 성과연봉제 도입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면서 "민간은행 성과연봉제 도입은 임금 부담을 감소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일을 열심히 잘하고 역량이 있는 직원이 제대로 평가 및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개선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저성과자 해고를 위해서는 '절대평가 방식'으로 개인평가를 실시해야 한다"며 "가이드라인에서는 '상대평가' 방식으로 개인평가를 실시할 것을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저성과자 해고와 연계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한국을 찾은 아시아 중견 공무원들은 경제적으로 더 잘 사는 한국은 금융산업에서도 배울 것이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은행이 업무 효율성을 높이는 기본적인 동기부여 방안인 성과연봉제조차 노조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도입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면 어땠을까. 한국 금융을 배우겠다는 열흘 남짓의 연수가 허무하게 느껴지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