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담합의 유혹', 끊어내기 힘든 이유

[기자수첩]'담합의 유혹', 끊어내기 힘든 이유

신아름 기자
2016.06.13 06:00

"똑같이 나쁜 짓을 했는데 누군 과징금 폭탄 맞고 누군 면제받으면 불공평하죠. 그게 고자질한 순서에 따라 결정된다면 더 그렇지 않겠습니까."

가격 담합 행위로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로부터 과징금을 부과받은 산업계의 한 인사는 이처럼 하소연했다. 관련 업체들 대부분 담합에 참여했지만 이를 가장 먼저 이실직고한 기업은 그 기특함(?)을 인정받아 수백억원대의 과징금을 전액 면제받았다는 것이다.

담합행위를 스스로 신고한 기업에 과징금을 면제해주는 '리니언시'(leniency) 제도를 향한 억울함의 토로다. 1997년부터 국내에서 시행된 리니언시는 그동안 수많은 담합사건을 적발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 참여 당사자의 자백 없이는 적발해내기 힘든 담합의 특성상 공정위가 이를 적극 권장해 온 결과다. 2014년 공정위가 과징금을 부과한 담합 사건 55건 중 40건은 리니언시에서 비롯됐다. 전체의 72%에 달하는 수치다.

문제는 이런 상황을 틈타 리니언시를 악용하는 기업들이 점점 늘고 있다는 점이다. 일단 담합 행위에 참여해 실익은 취하되 이후 업계 동태를 면밀히 살펴 '배신의 기운'이 느껴지는 상황 변화가 감지되면 재빨리 리니언시를 해버리는 식이다. 1순위 신고자로 인정되면 과징금을 100% 면제받을 수 있으니 담합에 참여했던 기업 모두가 리니언시를 하는 웃지 못할 일도 생겨난다.

설령 리니언시 혜택을 받지 못했더라도 실망하긴 이르다. 행정소송 제기로 과징금 감면을 기대해볼 수 있어서다. 과징금 처분을 받은 기업들이 당장 '행정소송 검토'라는 대응책을 내놓는 이유다. 실제 감사원의 최근 공정위 감사 결과를 보면 2012년 1월부터 2015년 7월까지 공정위가 최종 부과한 과징금은 약 2조원으로 최초 부과액인 5조원보다 3조원가량 깎였다. 감면 사유도 '시장 여건', '현실적 부담 능력' 등으로 불명확하다.

이처럼 빠져나갈 틈이 많은 법망 안에서 기업들의 담합 행위가 근절될 수 없는 건 명약관화다. 보다 촘촘한 판단 기준에 따른 리니언시 제도 운용, 최종 과징금에 대한 명확한 감면사유가 뒷받침될 때 '고무줄 과징금'의 꼬리표는 비로소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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