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적인 투자방식부터 글로벌 기준과 다른데 국내 벤처기업에 쉽게 투자할 수 있을까요.”
최근 테헤란밸리에서 만난 벤처캐피탈(VC) A대표는 “해외투자자들이 투자계약서를 검토하다가도 제동이 걸리니까 1000억원 이상 대규모 후속투자가 성사되긴 쉽지 않다”며 이렇게 말했다. 국내외 투자업계에서 20년 넘게 일한 A 대표는 실리콘밸리의 성공요인으로 다양한 투자방식을 꼽았다.
실리콘밸리 VC들은 ‘조건부지분투자’(SAFE) ‘컨버터블노트’(Convertible note·오픈형 전환사채) ‘청산우선권’(Liquidation Preference) 등 기존과 다른 다양한 투자방식을 고안했다. 글로벌 벤처투자의 지침으로 통용되는 이 투자방식들의 핵심은 대규모 후속투자에 우호적이라는 점이다.
대표적인 것이 ‘청산우선권’이다. 예컨대 기업가치가 100억원인 기업에 투자자가 30억원을 투자했다. 기업이 성장하지 못하고 50억원에 매각된 경우 청산우선권이 있으면 투자자는 30억원을 고스란히 돌려받는다. 남은 20억원도 지분율에 따라 우선 배분받는다. 통상 이 조항은 기업이 기대만큼 성장했을 때는 적용되지 않는다. 투자자들이 위험부담 없이 후속투자에 나서도록 고안된 기법인 셈이다.
청산우선권은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는 보편적으로 쓰이지만 국내에선 창업가들을 죽이는 ‘독소조항’으로 인식되며 논의조차 안 된다. A대표는 “한국은 투자방식이 RCPS(상환전환우선주) 등으로 천편일률적이다 보니 대규모 후속투자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내 VC 1곳당 투자금액은 평균 17억원 정도에 그친다. 미국의 11%, 중국의 7.5%에 불과하다.
국내에서 기업가치가 1조원 넘는 유니콘 기업 탄생이 쉽지 않은 것도 이처럼 투자방식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전세계 236개 유니콘 기업 중 우리나라 기업은 3곳에 불과하다. 국내 벤처시장이 한 단계 성장하기 위해선 글로벌 수준에 맞는 투자방식부터 검토해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