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일의 혁신기업답사기] 임정근 BHSN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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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을 작성하거나 판례를 찾아주는 건 리걸(법률) AI(인공지능)의 낮은 활용 가치다. 진짜 가치는 '반도체 공장을 어디에 지어야 하나', '보험료가 제대로 청구된 게 맞나'와 같은 고차원적 의사결정을 돕는데 있다."
법무법인 율촌 등에서 18년간 M&A(인수합병)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다 2020년 리걸테크 스타트업 BHSN(비에이치에스엔)을 창업한 임정근 대표는 김홍일 케이유니콘인베스트먼트 대표와의 대담에서 이같이 말했다.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사법연수원 35기로 법조계에 발을 들인 그는 스스로를 "사업가보단 연구하고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는 학자에 가까운 성향"이라고 소개했다. 알파고의 등장을 보며 AI가 인간의 엄청난 브레인이 될 것임을 직감해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변호사 시절 겪었던 비효율도 창업의 도화선이 됐다. 수조원대의 협상장에서도 근거 없는 블러핑(허세)이 난무하는 현실을 보며 정교한 데이터 관리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데이터만 제대로 활용해도 시간 낭비를 막을 수 있다"는 확신이 그를 움직였다.

BHSN은 다른 리걸테크 기업들과 달리 판례·법령 시장이 아니라 '계약서'에 집중했다. 임 대표는 "판례는 분명 양질의 데이터지만 비즈니스와 기업 법무의 핵심은 계약서"라며 "기업이 사람을 고용하든 물건을 사든 돈이 오가는 모든 활동은 결국 계약으로 귀결된다"고 했다.
이어 "단순히 계약서 작성 시간을 줄이는 것을 넘어 1만건 이상의 계약 데이터를 분석해 리스크를 탐지하고 갱신 주기를 자동 관리하는 기술을 구현했다"며 "데이터들을 처음부터 다 훑지 않도록 설계해 효율성과 신뢰성을 동시에 잡았다"고 강조했다.
BHSN은 법률 데이터를 '외부'와 '내부'로 나눠 접근한다. 법·판례·행정부 정책 같은 외부 자료는 이미 LLM(거대언어모델)이 대부분 학습한 상태인 반면 기업 내부의 계약서, 리스크 자료, 분쟁 기록, 사규 등은 LLM이 학습하지 않은 영역이라는 설명이다.
임 대표는 "해당 데이터는 수시로 바뀌고 새롭게 생성되는 살아 있는 데이터"라며 "AI의 브레인(LLM)이 점점 똑똑해지겠지만 LLM이 기본적인 것을 모두 안다고 했을 때 결국 관건은 '이 기업의 내부 정보를 어떻게 활용해 가치를 만들 것인가'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홍일 대표도 이 지점을 짚었다. 다른 기업들이 외부 데이터를 중점적으로 다룬다면 BHSN은 기업 내부에 산발적으로 존재하는 경험치를 데이터로 자산화하고 있어 차별화된 강점을 갖고 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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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대표는 "급격한 산업화를 거치면서 축적된 경영 노하우가 자산화되지 못하고 담당자의 머릿속에만 남아 있다가 퇴사와 함께 사라져 왔다"며 "계약서 데이터가 AI로 관리되면 과거의 반복된 실수와 리스크를 막고, 놓친 권리·의무를 자동으로 점검할 수 있다"고 했다.

임 대표는 빅테크의 LLM이 고도화되면 리걸 AI와 같은 '버티컬 AI'의 경쟁력이 약화되는 것 아니냐는 시각에 대해 AI의 기술 스택을 △에너지 △인프라 △칩 △LLM △애플리케이션(서비스) 등 5가지 레이어(계층)로 나눠 설명하며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그는 "LLM은 브레인이고, 그 위에서 데이터를 어떻게 처리하고 워크플로우를 어떻게 설계하느냐가 애플리케이션 레이어의 역할"이라며 "LLM 성능이 올라갈수록 그 위의 애플리케이션도 함께 고도화된다"고 했다.
빅테크의 범용 LLM을 그대로 쓸 때의 한계도 지적했다. 임 대표는 "범용 모델은 동영상·문서 등 온갖 것을 처리하도록 만들어져 특정 업무에 특화되지 못한다"며 "문서 1000개를 넣고 '알아서 하라'고 하면 오류가 쏟아진다"고 말했다.
이어 "비용 문제도 크다"며 "문서를 넣고 마음대로 시키면 토큰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발생해 감당이 안 된다. 그래서 데이터 구조를 미리 설계해 LLM이 매번 처음부터 일하지 않도록 프로세스를 잡아줘야 비용이 감당 가능한 범위로 줄어든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런 워크플로우 설계와 데이터 구조화가 나라별·산업별·케이스별로 다르고 끊임없이 바뀌기 때문에 빅테크가 이를 전부 대체하긴 어렵다"고 일축했다.

BHSN의 법률 문서 검토·검색 및 계약 관리 솔루션 '앨리비(allibee)'는 현재 CJ제일제당(182,600원 ▼3,400 -1.83%), 한화솔루션(30,800원 ▲950 +3.18%), 법무법인 율촌 등 대기업과 대형로펌 법무팀에서 사용성을 검증받았다.
임 대표는 "계약 관리를 핵심 축으로 삼되 세무와 헬스케어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며 "1년에 병원들이 청구하는 건강보험료가 100조원에 육박하는데 그 과정이 엄청나게 복잡해 오류와 손실이 크다. 1%만 개선해도 1조원의 가치가 생기는 셈"이라고 했다.
임 대표는 김홍일 대표가 변호사의 업무에 대해 "과거의 일을 뒤지는 게 업(業)이었으나 AI를 통해 미래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고 정의하자 공감을 표시하면서 "AI는 변호사만이 만들 수 있는, 가치 있는 업무로 전환하는 도구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BHSN은 그동안 쌓은 대기업 레퍼런스를 바탕으로 애플리케이션에 녹여낸 노하우를 중소·중견기업(SMB)으로 확산해 스케일업을 도모할 계획이다. 노하우와 프로세스가 부족한 작은 기업일수록 AI의 도움을 크게 받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글로벌 전략과 관련해선 한국을 시작으로 베트남·인도네시아 등 한국 기업들의 진출이 활발한 아시아 시장을, 특히 싱가포르를 거점으로 삼아 본격 공략한다는 구상이다.
임 대표는 "한국 기업이 많이 진출한 아시아는 우리에게 기회의 시장"이라며 "현지 규제와 계약 문화를 솔루션에 녹여 서구권 기업이 가지지 못한 BHSN만의 강력한 지리적 엣지를 구축함으로써 글로벌 리걸 AI 기업들과 승부를 펼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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