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일의 혁신기업답사기] 박대성 에스피아그리 대표
[스타트업에 대한 보다 다양한 기업정보는 유니콘팩토리 빅데이터 플랫폼 '데이터랩'에서 볼 수 있습니다.]

벼가 익어가는 충남 서산의 논밭을 한참 달리자 천고 높은 비닐하우스 단지가 나타났다. 겉모습은 온실이지만 안으로 들어서면 공장에 가까웠다. LED 조명 아래 딸기가 익어가고 그 사이를 로봇이 오간다.
농업회사법인 에스피아그리(SP AGRI)가 운영하는 7000평 규모의 하이테크팜 현장이다. 냉방과 LED 광원을 결합한 딸기 스마트팜으로는 세계 최대규모다. 한여름에도 생딸기를 생산하는 이곳은 단순한 농장을 넘어 데이터와 자본이 결합된 '아그리팹'을 지향한다.
김홍일 케이유니콘인베스트먼트 대표는 현장을 둘러보며 박대성 에스피아그리 대표에게 "왜 이토록 힘든 길을 가느냐"고 묻자 박 대표는 "멈춰 있는 것을 못 하는 본성 때문이다. 새로운 길을 내고자 한다"고 답했다.
박대성 대표는 글로벌 청과기업 돌(Dole)을 거쳐 스미후루(Sumifru)의 한국법인 대표직을 맡아 기업을 일군 30년차 청과 전문가다. 2003년 설립된 스미후루코리아는 연매출 1700억원대로 성장했고, 그는 취급 품목을 넓히기 위해 관계사 에스피프레시(SP FRESH)를 설립했다.

에스피프레시를 운영하며 농산물 유통의 한계를 경험하게 되자 직접 생산이라는 결단을 내렸고 자회사로 에스피아그리를 설립했다. 박 대표는 "농산물 유통은 해마다 룰이 새로 세팅된다"며 "쌓인 경험이 내년의 자산이 되지 않고 매년 처음부터 경쟁해야 한다"고 말했다.
에스피아그리는 서산에 테스트 온실을 지으며 사업의 첫 삽을 떴다. 다음 과제는 작목 선택이었다. 그는 "고수익을 내려면 진입장벽이 극단적으로 높아야 한다"며 "다른 사람이 못 들어오는 것을 찾은 결과가 여름 딸기와 라즈베리였다"고 말했다.
딸기는 저온성 작물이라 5~10월엔 생식용 재배가 사실상 불가능했다. 국내 딸기 15만톤이 모두 겨울에 쏟아지는 이유다. 11월 ㎏당 4만원까지 가던 시세는 3월이면 1만원 밑으로 떨어진다. 반대로 여름·가을 딸기 예상 판매가는 ㎏당 2만5000~3만5000원 선이다.
박 대표는 "겨울 수요의 10% 정도는 여름에도 존재한다고 봤다"며 "바나나와 망고처럼 1년 내내 공급되는 상품만이 1년 내내 수요를 갖는다. 딸기에는 그 고정 지지층이 아예 없었다"고 설명했다.

재배동 내부는 네덜란드 프리바(PRIVA)의 환경제어 시스템과 블루 라딕스(Blue Radix)의 AI(인공지능) 자동제어 등 첨단 기술력을 갖췄다. 3중 차광 스크린과 공기열 히트펌프, LED 보광, 대형 냉방·가습 설비가 맞물려 돌아간다.
여름철 순간 광량은 1000W/㎡를 넘어선다. 박 대표는 "아무 조치도 하지 않으면 온실 내부는 50도가 된다"며 "99%·90%·75% 차광 스크린 3장을 조합해 운전하는 전략이 곧 노하우이자 데이터"라고 말했다.
독자들의 PICK!
작물이 하루 받아야 할 광량(DLI), 배지 함수율, 배액의 전기전도도(EC)까지 센서로 실시간 추적한다. 흐린 날 부족한 광량은 LED로 메우고, 배액 EC가 치솟으면 뿌리 상태를 확인해 양액 농도를 낮춘다.
재배 베드는 2층 구조다. 평당 재배주수를 50주(株, 뿌리가 달린 식물 한 그루나 한 포기를 세는 단위)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일반 단층 하우스(23주 안팎)의 두 배가 넘는다. 별도 200평 공간에서는 5단 적층 식물공장도 운용 중이다.
지난해 한 해에만 40여개 품종을 테스트하며 약 20억원에 달하는 초기 시행착오 비용을 치렀다. 그 결과 국내 품종인 '고슬'과 유럽 품종 일부가 여름 재배에 가장 적합하다는 데이터를 확보하는 성과를 거뒀다.
박 대표는 생산뿐만 아니라 시장을 만드는 것 역시 모험이라고 강조했다. '여름엔 제철 과일을 팔아야 한다'는 바이어들을 설득해, 바나나처럼 딸기도 연중 공급되는 고정 지지층을 만드는 작업을 병행 중이다.
성과는 숫자로 나타나고 있다. 하루 수확량이 지난해의 경우 200㎏을 넘지 못했지만 올해는 400~600㎏ 수준으로 올라왔다. 올해 매출 50억~60억원에 손익분기점(BEP)을 달성하는 것이 목표다.

첨단 기술을 접목한 자동화도 진행 중이다. AI 농업 로봇 스타트업 메타파머스와 손잡고 수확 로봇 '옴니파머'를 시험 운용 중이다. 로봇은 밤 11시부터 오전 7시까지 익은 딸기를 선별·수확해 크기별로 분류한다.
새벽 수확은 품질과 직결된다. 박 대표는 "딸기는 품온이 낮은 새벽에 따야 한다"며 "해를 받은 뒤 수확하면 물러진다"고 했다. 야간에 지치지 않는 로봇의 강점이 강력히 발휘되는 지점이다.
무인 방제기와 UVC 살균 로봇도 가동되고 있다. 박 대표는 "10년 뒤면 2000만~3000만원짜리 휴머노이드가 모든 현장에 들어올 것"이라며 "그때 노동력은 문제가 아니다. 이 사업은 인프라와 데이터, 유통의 싸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여름 딸기 이후 에스피아그리가 타겟하는 다음 카드는 라즈베리다. 국내에 생과 수입이 금지돼 있어 냉동 형태로만 들어온다. 5년간의 격리 재배를 견뎌 라이선스를 확보했으며,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증식해 시장에 선보일 계획이다.
그는 "블루베리도 국내에 없던 과일인데 현재 시장 규모가 5000억원을 넘는다"며 "라즈베리는 최소한 그 절반은 갈 수 있다. 현재 국내에서 이 품종에 대한 라이선스를 가진 곳은 우리뿐"이라고 강조했다.
국내 생과 수입이 막혀 있는 칼라만시도 3년간의 증식 과정을 거쳐 독보적인 생산 체계를 갖추게 됐다. 수입 착즙액과는 차원이 다른 품질의 생과를 제공함으로써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미식의 경험을 제안하고 시장을 선점한다는 구상이다.
칼라만시의 경우 사계절 개화하는 데다 고온에 강해 여름 냉방이 필요 없다는 점도 강점으로 꼽힌다. 김홍일 대표는 에스피아그리의 전략에 대해 "기존 농가가 하지 않는 작목을 택한 것은 레드오션을 피한 것이자 농가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박 대표가 벤치마킹하는 모델은 미국의 베리 전문기업 드리스콜스(Driscoll's)다. 연매출이 수조원대에 달하는 비상장사로, 강력한 육종 리서치와 품종 IP를 기반으로 글로벌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에스피아그리는 서산에 3만5000평 부지를 추가 확보했다. 내년 3월 6500평 온실을 추가 준공하고 2028년까지 10만평을 채우는 것이 1차 목표다. 장기 목표는 100만평(330㏊). 평당 매출 90만~100만원을 적용하면 100만평은 곧 매출 1조원이다.
박 대표는 "10만평만 해도 매출 1000억원이 나온다"며 "스미후루·돌·제스프리 같은 글로벌 청과기업이 선점한 시장에 토종 기업으로 도전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품종 도입부터 육묘·생산·유통·수출까지 잇는 '수직계열화(밸류체인)'를 강력한 무기로 삼는다는 전략이다.
관건은 자본이다. 2023년 시리즈A로 70억원을 모았고 현재 시리즈B 라운드를 진행 중이다. 스미후루가 1대 주주로 매 라운드 참여하고 있다. 박 대표는 초기 투자유치 과정을 회고하며 농업 분야는 대규모 자본 조달이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김홍일 대표는 이 대목에서 한국 벤처 생태계의 구조적 문제를 짚었다. 그는 "스페이스X 초기 투자자들은 20년 이상을 기다려 회수했다"며 "한국은 펀드 만기가 5년이라 자본의 듀레이션(회수기간) 자체가 다르고 인내심이 너무 짧다"고 지적했다.
에스피아그리처럼 단순한 농업이 아닌 막대한 자금과 인프라가 투입되는 자본집약적 인프라 사업의 경우 자본시장이 이를 새로운 산업적 잣대로 바라보고, 장기적인 투자를 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돼야 한다는 얘기다.
박 대표는 기업형 농업 모델이 정착해야 우수한 인재들이 농업으로 유입되고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고 믿는다. 지방 소멸 문제와 기후 위기에 대응할 확실한 대안으로서 '규모화된 스마트팜'이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가 백사장 사진 1장과 유조선 도면만으로 조선소를 세운 일화에서 영감을 얻는다고 했다. 조선업의 불모지에서 세계적인 조선소를 세웠듯 현재 한국이 겪는 농업의 한계를 극복해 자본과 첨단 기술이 결합한 새로운 농업 모델을 정립한다는 목표다.
박 대표는 "현재 농업이 처한 문제들이 곧 기회"라며 "대규모·자동화·데이터 기반 단지를 만들면 내수와 수출 경쟁력을 동시에 가져갈 수 있다. 사계절 딸기를 시작으로 한국에서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글로벌 청과기업을 만들어내겠다"고 강조했다.
[머니투데이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유니콘팩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