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때 1560원대까지 올랐던 원/달러 환율이 1400원 아래로 내려오는 동안 힘을 잃은 설명이 있다. '엔화 동조화'다. 원화는 반도체 호황과 외국인 자금 유입에 힘입어 강세로 돌아섰지만 엔화는 미·일 당국의 공동 개입에도 다시 달러당 159엔선으로 밀렸다.
시장개입은 일시적인 쏠림을 완화할 수 있지만 통화의 방향을 바꾸지는 못한다. 엔화 약세의 직접적인 원인은 낮은 실질금리지만, 일본이 금리를 충분히 올리기 어려운 배경에는 국가부채가 있다.
1990년대 버블 붕괴 이후 경기부양과 고령화, 각종 위기 대응 과정에서 재정적자가 누적되면서 일본 정부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두 배를 훌쩍 넘었다. 금리를 올리면 국채 차환 비용이 늘고 국채가격 급락과 금융시장 불안도 감수해야 한다.
부채가 중앙은행의 선택지를 좁히고 낮은 실질금리는 다시 통화 약세를 고착시킨다. 일본의 엔저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니다.
한국의 재정여건은 아직 일본과 비교할 수준은 아니지만 방향은 심상찮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의 일반정부부채 비율이 올해 GDP 대비 54.4%에서 2031년 63.1%까지 오르고, 고령화 등에 대한 대응이 없으면 2050년 90~130%에 이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관리재정수지는 2년 연속 100조원대 적자를 이어가는데 재정준칙 도입은 흐려졌다. 정부는 내년 총지출을 평년보다 훨씬 빠르게 늘려 800조원대로 끌어올릴 태세다.
미래대응기금도 같은 시험대에 서 있다. 세수가 많이 걷힐 때 적립하고 불황기에 사용한다는 취지지만 용도가 청년부터 산업까지 광범위하다. 상시 지출을 위한 우회로가 될 수 있다.
정부는 반도체 호황으로 늘어난 세수를 "소극적인 재정건전성 관리에 활용하기보다는" 미래 성장을 위한 생산적 지출로 전환해야 한다고 밝혔다. 반면 국채 상환은 "필요한 경우" 할 수 있다고 했다. 빚을 갚는 건 선택사항이지만 새로운 지출은 이미 구체적이다.
재정의 지속 가능성은 호황이 끝난 뒤에도 지출을 감당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일본이 보여준 것은 재정 운용의 대가가 훗날 재정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