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크넥의 중국, 보틀넥의 한국[MT시평/윤종석]

브레이크넥의 중국, 보틀넥의 한국[MT시평/윤종석]

윤종석 서울시립대 중국어문화학과 교수
2026.08.28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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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중국 첨단과학기술 발전의 비결을 묻는 논의에서 '엔지니어링 국가 중국, 변호사적 사회 미국'(댄 왕, '브레이크넥')이란 대비가 자주 소환된다. "중국은 만들고 미국은 가로막는다"는 표현으로 종종 소개되지만, 사실 저자인 댄 왕의 의도는 서로 너무 다른 미국과 중국이 상대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 상대의 미덕(장점)으로 자신의 과잉(단점)을 교정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을 우리에게 옮겨보면 어떨까. 우린 상대의 어떤 장점으로 우리를 교정해야 할까?

댄 왕이 보기에 미국은 다원주의와 개인의 권리를 지키는 미덕을 갖지만, 법과 절차·심사와 이의제기가 거부권 체계로 굳으며 주택·철도·전력망과 공장을 실제로 건설하는 능력을 약화시켰다. 그사이 중국은 미국과 서구가 축적해온 산업적·기술적 성취, 산업적 야망을 자기 방식으로 흡수해 일부 전략 산업에서 미국을 위협하는 경쟁자로 부상했다. 하지만 중국의 방식은 사람과 사회까지 설계 대상으로 삼으면서 한 자녀 정책과 제로 코로나 같은 폭력도 낳았다.

중국의 힘은 공학자 출신 지도자 몇 명에게만 있지 않다. 중앙이 방향과 목표를 제시하지만 실제로는 지방정부와 기업, 대학과 연구소, 부품업체와 공급망의 수많은 주체가 '실행을 통한 학습(learning by doing)'을 반복했다. 설계도와 논문만으로는 이전하기 어려운 생산공정 지식이 사람과 조직, 지역에 축적됐다. 물론 이 생태계가 개방적이고 평등했던 것은 아니다. 국가의 목표와 자원배분이 강하게 작동했고, 실험과 성장의 비용은 노동자와 지역사회에 불균등하게 전가됐다.

한국은 암스덴(A.H. Amsden)이 제시한 '학습을 통한 산업화'의 사례이다. 선진국에서 검증된 기술과 산업의 정답을 빠르게 학습하고 생산현장에서 개선·확산해온 학습형 발전국가였다. 국가의 지원과 기업의 성과규율이 결합했고, 관료·기술자·노동자가 함께 경험을 축적했다. 그러나 그 학습 역시 위계적이었고 상당한 사회적 비용을 남겼다.

오늘날 한국의 보틀넥은 인재의 절대적 부족이 아니라 과거의 그 성공문법에 있다. 인공지능·바이오·기후기술처럼 정답이 미리 주어지지 않는 영역에서 복잡하게 착종된 사회경제적 문제의 해결에서 여러 주체가 문제를 새로 정의하고 해법을 시험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교육, 채용, 평가는 여전히 정답 위주고 검증된 경로를 재현한 사람에게 유리하다. 더 많은 사람이 실제 문제를 시험할 기회가 부족하고, 더 많은 사람이 역량을 축적하고 확산할 수 있는 생태계적 기반 마련이 너무도 시급하다.

중국의 브레이크넥을 흉내 낼 필요도 없고 가능하지도 않다. 한국은 추격형 학습국가에서 경로 창출형 학습국가로 나아가야 한다. 국가가 방향과 기반을 제공하되 문제의 정의와 해법, 실행을 독점하지 않아야 한다. 더 많은 사람과 조직이 만들고 실패하며 배우게 하고, 그 과정에서 드러난 역량에 신속히 기회를 주면서도 잘못된 방향에는 시민이 이의를 제기하고 수정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중국과 미국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만큼, 앞으로 그들이 우리에게서 '무엇을 배우고 싶게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윤종석 서울시립대 중국어문화학과 교수
윤종석 서울시립대 중국어문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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