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제품 구매 공공조달의 0.46% 불과
미 국방부 민간 시제품 절반 양산 전환
시장 만들어주는 창업지원정책 필요해
혁신 기술을 개발한 스타트업이 시장에서 부딪히는 장벽은 첫 고객을 확보하는 일이다. 제품을 소개하면 성능을 입증할 실적을 요구하고, 실적을 쌓으려면 누군가 먼저 구매해야 한다. 연구개발 지원을 받아 기술을 완성하고도 첫 고객을 만나지 못해 사업화 문턱에서 멈춰서곤 한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창업정책은 기업을 만들고 기술을 개발하도록 돕는데 많은 힘을 쏟았다. 올해 정부와 지자체의 창업지원사업은 무려 508개, 예산은 약 3조5천억원에 이른다. 창업자금, 연구개발, 사업화 등 다양한 지원은 필요하다. 그러나 지원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것과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스타트업을 지속가능하게 하는 것은 결국 고객과 매출이다.
정부는 지원기관인 동시에 거대한 구매자다. 지난해 우리나라 공공조달 규모는 238조 5000억원에 달했다. 정부는 혁신기술의 초기시장 형성을 위해 2019년 혁신조달 제도를 도입했지만, 지난해 혁신제품 구매액은 1조 1000억원에 그쳤다. 전체 공공조달의 0.46% 수준이다. 구매목표를 달성한 기관은 54%에 그쳤고, 지정된 혁신제품 2774개 중 32%는 구매실적이 전혀 없다. 공공기관은 여전히 검증된 공급자를 선호하고, 새로운 제품의 성능과 예산집행에 대한 부담을 쉽게 감수하지 못한다.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올해 창업지원사업 예산은 지난해 혁신제품 구매액의 세 배가 넘는다. 기업이 기술을 개발하도록 지원하는 데 많은 재원을 투입하면서 정작 그 기술을 구매해 초기시장을 만들어주는 역할에는 소극적인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공공의 구매력을 혁신기업의 성장에 활용하는 사례는 해외에서도 찾을 수 있다. 영국의 '혁신계약(Contracts for Innovation)'은 공공기관이 해결해야 할 문제를 먼저 제시하고 기업과 단계별 기술개발 계약을 체결한다. 기술개발 단계부터 실제 수요자가 참여하고 제품을 함께 검증하는 구조다.
미국 국방부 산하 국방혁신단(DIU)은 군이 필요로 하는 기술을 민간기업과 신속하게 개발하고, 시제품 검증 이후 양산계약으로 연결한다. 미국 회계감사원에 따르면 완료된 시제품 계약의 51%가 양산 단계로 전환됐다. 국방 분야에 특화된 제도지만 공공기관이 기술의 수요자이자 초기 구매자로 참여해 시장을 만든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나라에서도 중소벤처기업부와 조달청이 올해 도입한 '정부 첫 실증·구매 프로젝트'는 의미 있는 시도다. 기존 혁신조달이 주로 개발된 제품을 지정하고 구매를 지원하는 방식이었다면, 이 사업은 정부기관이 해결해야 할 문제를 제시하고 스타트업과 함께 현장에서 기술을 검증한다. 이후 혁신제품 지정, 시범구매, 해외실증까지 연결하는 구조다. 기존 제도에도 수요자 제안형 방식이 있었지만, 기술개발부터 구매까지 연결을 강화했다는 점에서 기대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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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중요한 것은 실증 이후다. 새로운 프로젝트 역시 실증에 성공했다고 실제 후속 구매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실증으로만 그친다면 또 하나의 창업지원사업이 늘어난 것에 불과하다. 성공적인 실증 이후에는 실제 구매로 이어질 수 있도록 예산과 절차도 함께 준비해야 한다. 다른 공공기관이 검증 결과를 활용해 신속하게 도입할 수 있도록 하고, 합리적인 위험분담과 구매면책도 실질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정부는 올해 혁신제품 공공구매 목표를 약 1조2500억원으로 확대하고 2030년에는 3조원 수준까지 늘릴 계획이다. 바람직한 방향이지만 구매총액을 늘리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혁신제품을 몇 개 지정하고 얼마를 구매했는지뿐 아니라 실제 사용기관과 후속 구매가 얼마나 늘었는지, 민간시장으로 얼마나 확산됐는지를 평가해야 한다. 모든 스타트업의 첫 고객이 정부일 필요는 없지만, 공공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혁신기술이라면 정부가 먼저 구매를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창업지원정책도 이제 시장을 만들어주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 공공이 스타트업의 첫 번째 고객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