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병원체는 정부 발표를 기다리지 않는다

[광화문]병원체는 정부 발표를 기다리지 않는다

임동욱 바이오부장
2026.10.12 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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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시베리아 이르쿠츠크 지역의 페스트 연구소에서 근무하던 28세 여성 연구원이 최근 숨졌다. 러시아 당국이 공식적으로 밝힌 사인은 '원인 미상의 폐렴'. 현지 언론에선 실험실에서 병원체가 담긴 시험관이 깨졌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폐렴형 페스트 감염 가능성이 제기됐다.

페스트(흑사병)는 페스트균에 감염되면서 발생하는 급성 열성 인수공통 감염병이다. 특히 폐렴형 페스트는 페스트균이 폐를 침범하는 형태로 감염자의 기침·재채기 등을 통해 사람 간 전파가 가능하다. 치료하지 않을 경우 사실상 치명적이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널리 쓰이는 백신은 없고, 조기진단 및 항생제 치료가 최선이다.

러시아 당국은 페스트 감염이나 실험실 사고가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약 200명의 접촉자를 격리하고 검사를 했지만 위험한 병원체가 검출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현재로선 사망한 연구원이 실제 페스트에 감염됐는지, 만약 감염됐다면 연구소 내 노출이 원인이었는지 모두 확인되지 않았다.

역학적 위험은 일단 낮아졌지만 의문까지 해소된 것은 아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러시아 측에 사망자의 검사 결과와 격리 조치의 근거, 접촉자들의 상태 등에 대한 추가 자료를 요구했다. 미국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러시아에 추가 정보 공개를 촉구했다.

이번 사건은 자연스럽게 코로나19 발생 당시 중국 우한을 떠올리게 한다. 코로나19가 우한바이러스연구소에서 유출된 것이란 주장이 있었는데, 지금까지 입증되지 않았다. 코로나19 첫 집단발병이 알려지기 전인 2019년 가을 우한연구소의 연구원 몇 명이 아팠다는 정보가 미국 정보망에 포착됐지만, 정보당국도 이것만으로 코로나19 감염이나 대유행의 기원을 판단할 수 없다고 봤다. 하지만 WHO 등이 요구한 핵심 자료가 충분히 공개되지 않아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논쟁은 끝나지 않았다.

실험실 감염 사고는 음모론이나 허구의 영역이 아니다. 2004년 중국 베이징의 국립바이러스연구소에선 SARS를 연구하던 연구원 2명이 감염됐고, 이는 지역사회 전파로 이어졌다. 1979년엔 소련의 군 생물학 연구시설에서 탄저균 포자가 우발적으로 대기 중으로 유출, 최소 66명이 숨졌다. 실험실 사고 여부는 철저히 검증해야 할 대상이다.

감염병 초기에 정보가 부족한 것은 피할 수 없다. 위험한 것은 불확실성 자체가 아니라 그 불확실성을 숨기는 일이다. 자료 공개가 늦어질수록 세계가 위험을 평가하고 대비할 시간도 사라진다. 다른 나라가 정보를 공개할 때까지 손놓고 기다릴 수만은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의 대비를 점검하는 일이다.

임승관 질병관리청장은 최근 국회 국정감사에서 "국내 (페스트 유입) 종합 위험도는 현재 낮은 수준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이어 "아직 신뢰할 만한 정보가 충분하지 않은 만큼 면밀히 모니터링하며 평가체계를 재확인할 계획"이라며 "추후 재평가 결과 (유입 위험도) 수준이 올라간다면 곧바로 검역 같은 필요한 조치를 강화할 것"이라고 했다.

모니터링과 검역도 중요하지만, 지금 함께 점검할 것은 원인불명 중증 폐렴에 대한 감시, 진단검사 체계, 격리병상, 치료제 투여 체계 등을 원점에서 살피는 것이다. 불필요한 공포를 키울 필요는 없지만, 방역은 낙관을 전제로 움직여선 안된다. 감염병 대응은 확진자가 나온 뒤가 아니라 가능성이 낮을 때부터 시작해야 한다.

바이러스와 세균은 정부의 공식 발표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아무 일도 없을 때 준비하는 것, 그것이 코로나19가 우리에게 준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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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욱 바이오부장

머니투데이 바이오부장을 맡고 있는 임동욱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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