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도'없는 국내증권사...기관·고객항의 "분위기상 힘들어"
증권가에 격언이 하나 있다. "주가맞추기는 '신의 영역'"이란 말이다. 증시는 '심리게임'의 장이다. 사소한 변수 하나에도 투자심리가 흔들리고 주식시장은 출렁거린다.
내로라하는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조차 정확한 전망과 예측을 하기가 쉽지 않은 건 이 때문이다. 더구나 요새처럼 변덕스러운 장이라면 전문가들의 고충을 미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렇다 해도 최근 투자자들에게 비친 국내 증권사의 모습은 실망스러운 게 사실이다. 기업 실적전망이 턱없이 빗나가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증권사들의 '장밋빛' 전망만 믿고 투자했다 얼굴색이 '잿빛'으로 변하는 투자자가 허다하다.
증권가에 따르면, 지난 23일까지 지난 해 4/4분기 실적을 발표한 유가증권시장 상장법인 22개 기업의 영업이익은 시장 추정치와 견줘 77.36%나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추정'이라고 하기조차 민망한 수준이다.
추정에 근거한 증권사들의 '투자의견'도 짚어볼 문제다. '어닝 서프라이즈'건 '어닝쇼크'건 거의 모조리 '매수' 일색인 탓이다. 1일 금융정보업체 와이즈리포트에 따르면, 최근 3개월간 국내 증권사가 낸 주요 기업분석 보고서 2339건 중 '매도(비중축소)' 의견은 단 4건에 불과했다.
이에 비해 '적극 매수' 107건 등 '매수의견'은 1702건이었다. 대다수 기업이 실물경기 침체로 인해 실적은 물론 펀더멘털이 급속히 악화됐지만 증권사들은 "팔라" 대신 "사라"고만 외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실례를 가장 비근하게 보여주는 것이삼성전자(251,250원 ▼9,750 -3.74%)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4분기 영업손실이 9400억원에 달했다고 지난 23일 발표했다. 증권사들의 추정치 4000억원을 훨씬 웃도는 적자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실적 발표 후 증권사들이 쏟아낸 삼성전자 관련 보고서 24건 중 '매도' 의견은 단 한 건도 없었다. '매수'에서 '시장수익률 상회(Outperfom)'로 하향 조정한 것과 '보유' 의견을 유지한 것 등 2건을 제외하곤 모두 '매수'였다.
목표주가 역시 일부 하향 조정되긴 했지만 거의 모든 증권사가 현재 수준보다 훨씬 높게 잡았다. 실적보단 삼성전자의 자체 경쟁력과 이른바 '키몬다 파산' 효과를 고려한 결과다. 하지만 애널리스트 사이에서도 "너무 낙관적"이란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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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증권사들도 할 말이 없지 않다. 가뜩이나 가라앉아 있는 증시 상황에서 시장 참가자들은 '긍정적 시각'을 바란다. 이런 분위기를 거슬러 '비관'을 말했다간 '공적'이 되기 십상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연구원은 "펀드매니저나 기관에선 '미래를 보자'는 말을 많이 한다"며 "분기 단위로 추천하던 국내 굴지 자동차 기업의 목표주가와 투자의견을 낮췄다가 한 기관에서 '왜 미리 연락없이 낮췄는냐'고 바로 항의하더라"고 전했다.
최근 삼성전자 보고서를 낸 한 애널리스트도 "실적과 펀더멘털을 보고 목표주가를 낮췄는데 보고서를 낸 당일 아침 고객들로부터 거센 항의 전화를 받았다"고 말했다.
다른 연구원은 "애널리스트 생활을 벌써 10년 넘게 했지만 증권가 구조상 '매도' 의견을 낼 때 부담이 상당히 크다"며 "투자의견이나 목표주가를 과감히 낮추고 싶은 생각도 많은데 현실적 요구를 도외시하긴 어렵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