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래 문제는 그 동네가 아니었잖아요." 한 중견기업 재무부서의 A모 부장은 점심식사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량기업을 중심으로 회사채 시장이 회복되고 있다는 신문기사를 보고 한 말이다.
지난 6, 7월 글로벌 채권시장의 변동성이 커지면서 줄줄이 회사채 발행을 미뤘던 우량기업들이 최근 회사채 시장에서 잇따라 자금조달에 성공하고 있다는 게 기사의 골자였다.
기사대로 지난달말부터 회사채시장 분위기는 달라졌다.LG전자(201,500원 ▲1,800 +0.9%),LG패션(22,500원 ▲450 +2.04%), 우리카드 등 발행시장 문턱을 넘은 기업이 연일 대박을 냈다. 해외시장에서도 한국가스공사에 이어SK이노베이션(138,300원 ▲7,500 +5.73%)이 글로벌본드를 발행해 흥행에 성공했다.
A부장은 "이런 기사를 보면 겁이 난다"고 했다. 그는 10년 넘게 자금조달 업무를 했다. 대부분 수월했지만 요즘처럼 여건이 안 좋으면 몇날 며칠 잠을 못 잔다고 한다. 그나마 고개를 들고 있는 금융당국의 관심마저 수그러들까 걱정된다는 말도 했다.
국내 일류기업을 뺀 대부분의 중견기업은 신용등급상 이른바 비우량 기업으로 분류된다. 이들의 자금 사정은 여전히 한겨울이다. 은행 문턱은 높고 주식시장은 침체됐다.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곳이 그나마 회사채시장인데 이마저 여의치 않다. 금리나 발행 규모가 문제가 아니라 발행 자체가 안 된다.
국민연금, 우정사업본부 등 연기금과 공제회는 신용등급 A- 미만 회사채에는 투자하지 못하도록 내부 기준을 정해놓고 있다. 비우량 기업은 회사채시장에서 이미 수요의 절반이 없는 상태에서 시작하는 셈이다. 시장 여건이 악화되면서 몇 안 되는 돈줄이었던 새마을금고, 단위농협 같은 지역 금융기관도 돌아선 지 오래다.
회사를 운영하면서 무차입 경영을 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사업이란 게 본래 '빚지고 투자해 상품을 파는 일'이다. 해마다 20조~30조원의 순이익을 남기는삼성전자(255,500원 ▲5,500 +2.2%)도 회사채를 발행한다. 자금줄이 마른다는 것은 기업에 '사망신고'나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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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량기업까지 회사채 발행이 어렵다고 아우성칠 때와 비교하면 그나마 부는 훈풍은 반가운 소식이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우량기업의 하소연은 금리의 문제였을 뿐 발행 자체가 불가능했던 것은 아니었다.
한 시장 관계자는 "다 같이 안 될 때보다는 오히려 잘 되는 사례가 나오면서 양극화가 심해질 때가 더 큰 위기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