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모닝인사이트] AI와 조세제도

인공지능(AI)이 인간의 일자리를 줄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기존 조세제도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사람의 소득에 부과하는 기존 과세 체계를 유지하는 경우 세수가 크게 줄어들 수 있어서다. 반면 일자리가 줄어드는 경우 재교육과 복지 등으로 정부 재정 지출 필요성은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IMF(국제통화기금)도 AI가 창출한 부가가치를 어떻게 과세할 것인지가 경제정책의 과제로 보고 있다.
IMF는 지난 14일(현지시간) 태국 방콕에서 열린 연차총회에서 'AI 시대의 조세제도 재설계' 토론회를 개최하고 AI가 대규모로 확산되고 일자리가 줄어드는 경우 조세제도를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에 대해 논의했다. 해당 토론회에서는 AI 도입으로 생산성이 늘고 경제가 성장하더라도 조세 수입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경제는 성장하는데 조세수입은 줄어든다? AI의 딜레마
리서치업체 윈드폴트러스트의 에이드리언 브라운 대표는 해당 토론회에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의 노동시장 변화를 분석한 결과 향후 10년 동안 노동인구의 30%가 AI에 따른 고용 변화의 영향을 받으면 정부 세입이 3~4% 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소득과 경제적 가치가 해외로 이전되는 효과까지 고려하면 감소폭이 최대 8%에 이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정부의 총수입은 637조 4000억 원이었다. 여기에 브라운 대표가 제시한 감소율을 단순 적용하면 연간 세입 감소 규모는 약 19조~25조 5000억 원에 달한다. 해외로의 소득 이전 효과까지 반영한 최대 8% 감소 시나리오에서는 약 51조 원이 감소할 수 있다.
경제는 성장하는데 세수가 줄어드는 상황이 어떻게 가능할까. 문제는 세금을 어디에 부과하느냐에 있다. 노동자가 받는 월급에서는 소득세와 사회보험료가 발생한다. 같은 업무를 AI 서비스나 자동화 설비로 처리하면 그 소득은 노동자의 임금 대신 기업 이익 또는 설비 투자 수익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AI 도입으로 일자리가 감소할 때, 기업이 얻은 이익이 법인세나 자본소득세로 충분히 포착되지 않으면 세수 공백이 생길 수 있다. AI 서비스를 구글, 오픈AI 등 해외 기업에서 구매하는 경우라면 이익 일부가 국경 밖으로 빠져나가는 문제도 있다.
문제는 AI 도입으로 일자리가 줄어드는 경우 정부 재정 지출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세입이 줄고 지출이 늘어나는 이중 압박이다. 노동 대체가 급격하게 진행되면 정부는 실업급여와 재취업 지원, 직업훈련 등에 더 많은 돈을 써야 한다. 브라운 대표는 "복지지출 증가까지 감안하면 재정에 가해지는 압박이 두 자릿수에 이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독자들의 PICK
지금 1,403명 읽는 중
![[서울=뉴시스] 김선웅 기자 = 테라파워·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게이츠 게이츠 재단 이사장이 1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 한성숙 국무총리 접견 차 방문하고 있다. 2026.08.14. mangusta@newsis.com /사진=김선웅](https://thumb.mt.co.kr/cdn-cgi/image/f=avif/21/2026/10/2026101515475292816_2.jpg)
AI·로봇에 세금부과?…AI 군비경쟁 시대 가능할까
그렇다면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할 때마다 세금을 물리면 어떨까.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 빌 게이츠는 지난 2017년 미국 온라인매체 쿼츠와의 인터뷰에서 "공장 노동자가 5만 달러어치 일을 하면 소득세와 사회보험료가 발생하는데, 로봇이 같은 일을 한다면 비슷한 수준의 세금을 매길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로봇세'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은 같은 해 세법 개정을 통해 자동화 관련 생산성 향상 시설의 세액공제 혜택을 줄였다. 로봇에 직접 세금을 부과한 것은 아니지만 자동화 투자에 주던 혜택을 축소했다는 점에서 '한국형 로봇세'로 불렸다.
그러나 그해 유럽 의회에서는 일자리를 대체하는 로봇 소유자에게 세금을 부과해 재교육 재원을 마련하자는 제안이 채택되지 못했다.
문제는 AI에 세금을 부과하면 기술 발전과 생산성 향상도 늦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AI 덕분에 기업의 생산비가 내려가고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가 등장한다면 그 혜택은 소비자와 노동자에게도 돌아갈 수 있다. 과세가 기업의 AI 개발·도입을 위축시키면 이런 효과가 나타나는 시점도 뒤로 밀린다. 과세로 일자리를 보호하려다가 장기적인 성장의 기회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각국이 앞다퉈 AI 투자를 늘리는 이른바 'AI 군비 경쟁' 상황에서 자국의 기술 발전을 저해할 수 있는 세제를 도입할 가능성도 높지 않다. 실제 정부의 정책은 오히려 과세와 정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기도 한다. 뤼트 더 모이 IMF 재정국 부국장은 미국 35개 주에서 데이터센터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세제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IMF가 개최한 이번 토론회에서는 세금을 어느 단계에서 매기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분석도 제시됐다. 이오아나 마리네스쿠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교수는 AI 개발에 쓰는 반도체와 연산자원에 과세하면 기술 발전이 느려지면서 전환기 실업률의 최고 수준을 낮출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생산성과 임금이 높아지는 효과 역시 늦게 나타났다고 봤다.
반면 기업이 AI를 이용할 때 소비하는 데이터 처리 단위인 '토큰'에 세금을 매기는 방식은 다른 결과를 보였다. AI를 현장에 도입하는 시점은 늦어지지만 실업률의 최고 수준은 낮아지지 않고 발생 시점만 뒤로 밀릴 수 있다는 것이다. 노동자가 바뀐 환경에 적응할 시간을 벌어줄 수는 있지만 과세만으로 노동시장 충격을 없애기는 어렵다는 분석이다.
제3의 대안?…자본소득 과세 강화·국제조세 개편
IMF 연구진은 2024년 6월 보고서에서 AI나 로봇에 직접 세금을 매기는 대신 노동을 대체하는 투자를 과도하게 우대하는 세제 혜택을 재검토하고 자본소득 과세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AI 도입 행위에 일률적으로 세금을 매기는 대신, 기술이 창출한 이익에 적절히 과세하자는 방향이다.
구체적으로는 △법인세를 통한 과세 기반 확보 △AI 기업의 독점적 지위 등에서 발생하는 초과 이익에 대한 추가 과세 △자본이득 과세 강화 등이 거론된다. 국제적 조세 회피를 줄이기 위한 국제공조도 대안이다.
AI 기업의 이익이 국경을 넘나드는 것도 과제다. 미란다 스튜어트 미국 뉴욕대 교수는 해당 토론회에서 이용자의 데이터와 서비스 소비가 경제적 가치를 만드는 만큼 AI를 개발한 나라뿐 아니라 이를 이용하는 나라에도 과세권을 배분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기업의 AI 서비스가 한국의 업무를 대체할 경우 한국에도 세금을 내야 한다는 주장이다.
브라운 대표는 토론회에서 "각국 정부는 AI로 인한 변화가 일어나기 전에 조세·복지제도가 재정 충격에 대응할 수 있는지 지금부터 점검해야 한다"며 "실제로 이런 변화가 일어날지, 언제 일어날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지금 준비하는 것이 미래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