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 글로벌 CEO인터뷰-1] 매출 12조 세계 전선업계 1위 넥상스 회장
길게 늘어진 검은색 3단 책상과 서랍장 그리고 티 테이블 하나.
2008년 68억 유로(약 12조원)의 매출을 낸 세계 1위 전선 기업 넥상스의 회장 집무실치고는 너무나 단출했다. 6평 남짓한 회장실에는 고급 소파는 물론 화려한 장식장이나 값비싼 그림도 없었다.
서랍장 위 2개의 액자가 눈에 들어왔을 뿐이다. 왼편에는 전임자인 제라 오제 회장과 찍은 사진이, 오른편에는 두 남자아이(13살, 9살)와 다정하게 찍은 사진이 있었다. "평소에 출장이 많기 때문에 쉴 때는 항상 아이들과 시간을 보낸다"는 프레데릭 방상(Frederic Vincent, 54세) 회장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지난해 12월 10일 프랑스 파리 넥상스 본사에서 만난 방상 회장은 체구는 크지 않았지만 짙은 눈썹 아래 큰 눈과 중후한 목소리가 상대방을 압도했다.
방상 회장은 최고재무책임자(CFO)를 거쳐 2006년부터 최고운영책임자(COO)로서 3년간의 경영자 수업을 마치고 2009년 5월 최고경영자(CEO)에 올랐다.
글로벌 경제 위기가 채 가시지 않아 CEO 데뷔 시기치고는 혹독했을 법도 하다. 그런데도 방상 회장은 "꽤 만족스러운 한해였다"고 2009년을 총평했다. 이어 "글로벌 전선업계의 통합은 계속될 것"이라며 인수합병(M&A)을 2010년 글로벌 전선업계의 화두로 제시했다.
"2009년은 쉽지 않은 해였습니다. 하지만 넥상스 매출의 45%를 차지하고 있는 인프라 네트워크 케이블을 예로 들면, 전세계적으로 인프라 네트워크에 대한 투자가 지속되고 있어 상당히 안정적인 편입니다. 유럽 대륙 내 국가를 연결하고 또 본토와 섬을 잇는 등의 작업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넥상스는 △기간산업(인프라 네트워크) 전선 △일반산업 전선 △빌딩산업 전선 등 크게 3대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기간산업은 항공용 전선, 지중선, 해저케이블 등을 만들고, 일반산업은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산업용 특수 전선을 만들어 조선소, 비행기 제조사, 철도회사 등에 공급한다. 빌딩산업은 빌딩에 들어가는 전선을 제조한다. 각 사업부가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8%, 21%, 31%다.
그러나 산업 및 건설 부문은 글로벌 경제위기의 영향을 적잖이 받았다고 한다. 그는 "항공과 철도 그리고 몇몇 특정 분야를 제외하면 대부분 분야가 전년 대비 15~20% 감소됐다"며 "유럽만이 아닌 글로벌 문제"라고 진단했다. 이 때문에 글로벌 전선업계가 모두 똑같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넥상스는 나름대로 선방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상반기 실적의 경우 이탈리아 프리즈미안 18%, 미국 제네랄케이블과 드라카가 20%씩 감소했지만 우리는 16% 줄어드는데 그쳤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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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상스가 선방할 수 있었던 비결로는 '지정학적 포트폴리오'와 '기간산업의 전문기술'을 꼽았다.
그는 "넥상스는 한 지역에 모든 것을 걸지 않는다"며 "시장은 성장 속도가 제각기 다른데 이 같은 원칙은 특정 지역 시장 상황이 변해도 기업에 충격을 주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미국에서의 부진을 유럽이 상쇄하고 유럽이 좋지 않을 때는 신흥시장 등이 보완해준다는 설명이다. 넥상스의 지역별 매출은 유럽이 48%로 절반 가까이 차지하고 미국(15%), 중동-러시아-아프리카(14%), 아시아태평양(13%), 남미(10%) 순이다.
방상 회장은 또 "넥상스는 기반산업 부문의 전문기술이 탁월하다"며 "특히 세계적으로 수요가 높은 '하이 볼티지'(초고압)가 강점"이라고 말했다.
넥상스는 초고압 중에서도 부가가치가 크고 높은 기술력을 요하는 해저케이블이 강점이며 특히 전력선, 컨트롤러 등을 패키지로 묶은 '엄빌리칼' 기술력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이어 "전력망, 국가간 또는 본토와 섬의 연결, 신재생 에너지 등에 하이 볼티지 수요가 높다"며 "기간산업은 21세기 전선업계의 주요 성장 분야가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강조했다.

세계 경제가 불황에 직면했을 때 CEO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자질은 무엇일까. 방상 회장은 '자동차 페달론'을 꺼내 들었다.
그는 "CEO는 가속페달과 브레이크페달을 조화롭게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며 "브레이크페달은 비용을 관리하고 자본흐름을 관리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경제가 어려워도 경제 위기와 상관없이 계속해서 성장하는 제품, 분야, 시장, 국가가 있다"며 "이렇게 성장하는 곳에서는 가속페달을 밟아야 한다"고 부연했다.
방상 회장은 또 "고객은 항상 최우선이지만 어려운 때에는 특히 신경을 더 써야 한다"며 고객관리의 중요성도 역설했다.
"어려운 때는 고객들이 보다 좋은 조건을 위해 다양한 공급자를 물색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품질이 좋은 제품을 파는 것은 물론 고객의 필요(니즈)를 먼저 파악해 대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업은 고객의 지원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불황기가 지나면 이런 고객의 선택에 따라 승자와 패자가 더욱 분명히 갈리기 마련이다. 최악의 불황이 지난 2010년 글로벌 전선업계의 승자와 패자 구도는 어떻게 될까. 방상 회장은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어렵다"면서도 "통합 추세(consolidation process)는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전선업계 통합은 2001년 넥상스가 지금의 넥상스코리아(옛 대성전선)를 인수하면서 촉발된 프로세스로 볼 수 있다"며 "좋은 의미에서 다른 기업들도 이런 움직임을 따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한국이 아태 지역에서 움직임이 활발했다"면서LS(367,000원 ▼14,000 -3.67%)전선과대한전선(31,850원 ▼1,850 -5.49%)을 예로 들었다. "LS전선은 미국 수페리어에식스(SPSX)를 1200만 달러에 인수했는데 좀 비싸게 샀다고 생각한다"며 "대한전선도 세계 2위인 프리즈미안 지분 10%를 샀다"고 언급했다.
연장선상에서 옛 대성전선과 극동전선 등 과거 한국에서의 두 차례 M&A를 높게 평가했다. 옛 대성전선과 극동전선은 각각 2001년, 2003년에 넥상스 가족이 됐다.
그는 "두 회사는 모두 첨단기술을 보유하고 있고 특히 고객에 집중하는 점이 매우 좋다"면서 "두 회사를 넥상스 가족으로 맞은 데 대해 아주 만족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돌이켜보면 이미 통합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고 이 트렌드는 계속될 것"이라며 시장점유율(MS)을 근거로 제시했다. 그는 "세계 1위인 넥상스의 점유율 7%고, 2위 프리즈미안 점유율은 5%인데 1, 2위를 합쳐봐야 12%밖에 안 된다"면서 "넥상스는 지속적인 M&A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넥상스는 지금까지 M&A에 10억 유로 이상 투입해 왔습니다. 경쟁력과 위상을 강화하는 데 M&A는 유용한 방법입니다. 단 '탱고를 추는 데 2명이 필요하다'는 미국 속담처럼 인수되기를 희망하는 회사가 있어야 하고 또 의지가 중요합니다."
넥상스는 M&A와 함께 신재생에너지 분야를 집중 육성해 글로벌 리더십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방상 회장은 "유럽은 '쓰리 트웬티(3-20)' 정책에 따라 2020년까지 에너지의 20%를 감축해야 한다"면서 "21세기는 풍력발전처럼 친환경에너지, 신재생에너지의 발전이 성장 동력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한 '투 트랙' 전략에 따라 선진국은 물론 신흥시장 개척에도 힘을 쏟는다는 구상이다. '투 트랙'은 선진국의 경우 개·보수 및 신규 수요를, 신흥시장은 도시화 및 산업화에 따른 수요를 공략하는 전략이다.
신흥시장 가운데서도 방상 회장은 "특히 인도 시장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그는 "모두가 중국을 얘기하고 있지만 인도가 보다 중요하다"며 "인도는 공항, 전기망, 철도 같은 기반시설이 중국만큼 발전되지 않아 넥상스가 집중하는 시장"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최근 인도에 합작사를 설립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며 "중국에서의 성장도 기대하지만 당분간은 상당히 제한적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한국에서의 경험이 시장 개척에 도움이 된다"면서 "기존 두 기업을 중심으로 사업을 지속적으로 확장해 나가되 (한국에서) 추가 M&A를 계획하고 있지는 않다"고 덧붙였다.
방상 회장은 취임 후 7월 한국을 방문한 경험담도 꺼냈다. "한국은 역동적이고 흥미로운 나라"라고 전제한 그는 "한국하면 전문성, 성장의지, 첨단기술, 높은 교육열이 떠오른다"며 "지속적으로 성장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1시간여의 인터뷰를 마친 후 방상 회장은 직접 엘리베이터까지 기자를 배웅하며 큰 손으로 악수를 청했다. 한국에서 새로운 만남을 기대한다는 말과 함께.
방상 회장은 누구?
"저보다 셀린(홍보팀 직원)이 더 바쁘고 한국 팀원들이 더 바쁩니다. 저는 그저 바쁜 사람 중 한 사람일 뿐입니다."
방상 회장은 매출 13조원의 거대기업 수장이면서도 겸손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그러나 일에 있어서는 "CFO 출신답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꼼꼼하다.
넥상스 관계자는 "방상 회장은 꼼꼼하면서도 통합적인 능력이 뛰어난 분"이라며 "나무 하나하나를 면밀히 보면서도 전체적인 그림(숲)을 잘 그리는 게 특기"라고 말했다.
방상 회장은 1978년 회계법인에서 사회생활을 시작, 1986년 알카텔에 입사해 1994년 알카텔 해저통신사업부 회계관리 사업총괄이사를 거쳤다. 이후 넥상스 그룹 CFO(2000년)를 지내며 차기 회장으로 낙점, 예비 경영자 과정 일환으로 2006년부터 COO를 맡아오다 2009년 5월 회장 겸 CEO에 취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