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둘째 아이 욕심 못내는 속사정

[광화문]둘째 아이 욕심 못내는 속사정

박창욱 생활경제부장
2010.11.11 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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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있는데 뭔가가 배 위로 '훅' 떨어진다. 놀라 눈을 떠보니 아니나 다를까 세 살짜리 아들 녀석이다. 녀석은 아직은 정확하지 못한 발음으로 “아빠 놀아요” “우유 주세요”를 연발한다. 매주 토요일 아침마다 우리 집에서 벌어지는 광경이다.

'이런 불효막심한 놈. 네 아빠는 토요일 하루만이라도 푹 자야 피로를 풀 수 있단 말이다.' 이런 내 사정을 세 살짜리가 알아줄리 만무하다. 더구나 아들 녀석 딴엔 1주일 만에 보는 제 아빠가 반가워서 하는 짓이기도 하다. 난 주중엔 아들이 깨 있는 모습을 거의 보지 못한다. 아들이 자고 있을 때 출근하고, 자고 있을 때 집에 들어가는 일상 때문이다.

하여 토요일은 주로 아들과 온전히 함께 보낸다. 특히 주중에 육아 때문에 매여 있는 제 엄마가 하루라도 자기 시간 가질 수 있게 해주기 위해 부자 둘이서만 지낼 때가 종종 있다. 그렇게 아내가 없을 때 난 초긴장 상태다. 아들 녀석이 “똥” 그러면 얼른 유아용 변기를 대령해야 한다. 그런데 오줌만 싸면 정말 다행이다. 큰 거보단 소변이 훨씬 치우기 좋다. 아무리 아들 똥이라도 냄새는 괴롭다.

아들은 요즘 부쩍 말이 많이 늘었다. 덩달아 요구사항도 많아졌다. 밥을 먹이려면

“내가 내가” 그런다. 직접 먹겠다는 건데, 그래봤자 절반 이상은 제 옷에 다 흘린다. 녀석이 좋아하는 반찬(요즘엔 고등어구이에 꽂혔다)을 숟가락 위에 올려주지 않으면 “아니야 아니야” 그런다.

사십대 아버지의 저질 체력으로 세 살짜리 아들과 놀아주려면 너무 벅차다. 녀석은 요즘 발자국 놀이에 빠졌다. 양 팔을 잡고 들어 올려 주면 제 발로 바닥을 구른다. 아들이 즐거워하는 건 좋지만 이게 한번 해주면 끝이 없다. 워낙 우량아인지라 3,4번 해 주고 나면 기운이 빠지고 허리도 꽤 아프다. 그런데도 아들놈은 혀 짧은 소리로 “또 해요"다. 차라리 나가 일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아들도 제 '밥값'은 충분히 한다. 우리 부부는 순전히 아들 덕분에 웃고 산다. 일을 해야 하는데 인터넷이 안 돼서 끙끙거리고 있으면, 아들놈이 옆에 다가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을 건다. “안 돼요? 안돼요?” 그 모습에 짜증이 눈 녹듯 없어진다. 어느 토요일은 저녁대신 치킨을 시켜먹었다. 아내가 캔맥주를 냉장고에서 꺼내는데 아들놈은 그걸 내게 들고 와 “아빠 꺼, 아빠 꺼” 그런다. 그리고선 주스잔이랑 건배하자는 시늉을 낸다. 치킨이 한 3배쯤 더 맛있어진다.

그런데 이렇게 이야기하고 보니 사실 좀 부끄러워진다. 내가 아들과 함께 지내는 건 단지 토요일뿐이라 아들에게 너무 미안하다. 친근한 아빠로서 아들의 성장과정을 오롯이 함께 나누고 싶지만 사실상 그러기 어렵다. 내게 주어진 일을 처리하기에도 벅차고, 임무를 위해 사람 만나기도 힘에 겹다.

아버지로서 아들이 비빌 자그마한 언덕이라도 되어 주려면 `죽을 둥 살 둥` 사회생활을 해야 한다. 그리하자니 아들과 지낼 시간이 너무 모자라다. 딜레마다. 아들이 기댈만한 울타리가 되고자 할수록 아들과 멀어져야 하는 현실이다. 그러는 사이 아들은 커 갈 테고, 나는 아들에게 점점 형식적인 존재로 변해갈 것이다.

괴테는 “가장(家長)이 확실하게 자리 잡은 가정에는 다른 데서 찾기 힘든 평화가 깃든다”고 했는데, 난 가정 생활은 고사하고 치열한 생존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내 모든 걸 털어 넣어야 한다. 이게 바로 내가 둘째 아이 가질 욕심을 섣불리 못 내는 속사정이다. 이런 고민이 어디 나 혼자만의 것일까. 최근 저출산의 근본 원인이 열악한 육아 환경이나 과도한 교육비 때문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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