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장사가 투자자관계(IR) 활동을 하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한국거래소가 상장사들의 손과 발을 꽁꽁 묶어놓으려는 것 같습니다."
기자가 최근 방문한 상장사들의 IR담당자들은 하나같이 이 같이 토로했다. 한국거래소로부터 날아온 A4 용지 한 장 분량 이메일 때문이다. 거래소 공시업무담당자가 상장사 IR담당자들에게 일괄적으로 보낸 이메일 내용 일부를 발췌하면 이하와 같다.
"언론의 취재권한이나, 기업들의 IR 활동을 제한하지 않습니다. 다만 보도목적 취재에 응하거나, IR을 통해 공시대상 정보가 발표될 경우, 공시대상 여부를 확인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해 공시위반에 해당되지 않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애매모호한 내용이 담긴 이메일을 접한 IR담당자들은 혼란에 빠졌다. 한 상장사 IR담당자는 "이메일을 본 후 회사를 방문하는 언론사와 증권사 관계자들에게 어디까지 정보를 제공해야 할지 모르겠다. 말 한번 잘못했다가 거래소로부터 어떤 조치를 당할지 두렵다"며 취재를 위한 질문에 말을 아꼈다.
거래소는 상장사 방문취재 외에 여의도 등에서 개최하는 공식적인 IR 행사까지 제재를 가하고 있었다. 또 다른 상장사 IR담당자는 "매 분기 IR 행사를 진행하는데, 거래소가 이때마다 보도된 문구 하나하나에 시비를 건다. 이 때문에 거래소에 사유서를 제출한 것만 수차례"라고 토로했다.
물론 거래소는 공시라는 제도를 통해 상장사들의 올바른 정보를 투자자들에게 공평하게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다. 최근 일부 상장사가 IR을 통해 부실한 기업의 가치를 부풀리거나, 최대주주의 엑시트를 위해 일시적으로 주가를 부양하는 사례가 늘면서 거래소 역할이 더욱 강조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거래소가 도를 넘어 상장사들의 IR 활동에 제약을 가할 경우, 투자 유치와 기업 알리기 등 상장사의 고유 권한을 침해할 수 있다. 나아가 언론사가 투자자들에게 제공해야 하는 '알권리'마저 침해할 수 있다.
거래소는 투자자들이 잘못된 정보로 인해 자산에 손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상장사들을 관리감독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의무 이행이 지나쳐 간섭으로 번질 경우, 상장사들의 정당한 IR 활동을 위축시키고, 상장사 정보를 투자자들에게 발 빠르게 보도해야 하는 언론의 고유 권한까지도 침해할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