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정주영 엔젤 투자기금'이 출범한 지난달 28일.
아산나눔재단이 1000억원의 창업 씨앗자금(시드머니) 지원 계획을 밝힌 서울 상도동 '정주영 창업캠퍼스'는 활기가 넘쳤다.
국내 대기업이 청년 창업에 직접 '투자'하는 첫 '엔젤펀드'인 만큼 언론의 관심도 컸다. 심각한 청년 실업의 대안으로 청년 창업이 급 부상하고 있는 사회의 분위기를 반영했다. 정주영 기금에 앞서 지난해에는 포스코가 젊은 벤처인들의 창업 아이디어를 사고팔 수 있는 장터를 열기도 했다.
하지만 이날 출범행사를 지켜보면서 이제 막 싹트기 시작한 '창업 지원'이 자칫 또다른 '창업 엘리트 지원'이 되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날 행사에서 아산나눔재단 관계자는 "10명중 2~3명만 창업에 성공하면 나머지 8명에게 투자한 것을 다 상쇄하고도 남는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성공한 케이스를 건지기 위해 다른 '실패'를 감수한다"는 시각은 그 자체가 '성공'과 '실패'를 구분하는 걸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엔젤펀드의 출범 취지와는 100% 들어맞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다.
성공가능성이 어느 정도는 입증돼 수익성을 기대할 수 있는 벤처투자와 달리 엔젤투자는 수익보다는 '다양성'에 투자하는 개념이다.
10명중 2~3명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가능성이 낮더라도 젊은이들이 사회의 획일적 기준과 모범 답안지에서 벗어나 날개를 펼칠수 있도록 해주는게, 말 그대로 '엔젤'들이 할 일이다.
한국에서 취업난을 직접 겪어본 이들은 공감할 것이다. 경제학, 경영학, 공학이 아닌 인문사회학 전공자들은 (여전히) '갈 곳'이 없다. 바로 써 먹을 수 있는 지식이 없어서다.
한국사회는 적어도 이처럼 상상력과 엉뚱함에 대해서는 척박한 토양을 지닌 게 현실이다. 엔젤펀드의 '심사'마저 이렇게 될까 겁부터 지레 먹게 되는게 취업난을 누구보다 절실하게 겪어본 세대로서 갖는 솔직한 심정이다.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아들인 정몽준 의원은 이날 행사에서 부친이 무작정 서울로 상경했을 때 한 투자자로부터 지원을 받아 자동차 수리업에 뛰어들었던 사례를 청중들에게 소개했다. 정진홍 나눔재단 이사장은 또 "다른 재단들과 차별화된 사례들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말했다.
'정주영 엔젤 투자기금'같은 시도가 정말로 기존 대기업들이 만든 여러 재단들과 달리 '제2의 정주영'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젊은이들의 아이디어만큼이나 베푸는 이들의 열린 가슴이 더욱 절실하다.
취업도 잘 할 수 있는 청년들이 창업까지 싹쓸이 하는게 아니라 취업 못하는 괴짜들이 상상력을 발휘하고 사회에 뿌리를 내릴 수 있게 해 주는 엔젤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나는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