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년 전부터 대기전력 0.5∼1와트(W) 수준의 제품들만 생산하는데요. 12W 이상 대기전력을 잡아먹는다니요? 어떤 회사 제품을 가지고 측정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고객이 저렴한 제품을 요구할 경우엔 대기전력 기능을 뺀 제품을 일부 생산하기도 합니다. 이를 두고 모든 셋톱박스를 싸잡아 '전기흡혈귀'로 취급하는 것은 정말 억울한 일입니다."
셋톱박스 업계가 최근 한국전기연구원이 발표한 내용에 반기를 들었다. 한국전기연구원이 발표한 '2011년 대기전력 실측조사'에서 가정에서 쓰이는 전자제품 가운데 대기전력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제품으로 '셋톱박스'가 꼽혔기 때문이다.
대기전력이란 가전제품의 전원을 꺼도 플러그를 뽑지 않는 한 계속 흘러나가는 미세한 전기를 말한다. 사람이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전기를 잡아먹는다고 해서 '전기흡혈귀'라고도 불린다.
조사에 따르면 셋톱박스는 시간당 12.27W의 대기전력을 소모했으며, 이는 1.3W인 TV보다 10배 가까이 높은 수치다. 셋톱박스가 TV에서 케이블이나 위성 등 방송을 시청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보조 장치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는 '배보다 배꼽 큰' 놀라운 수치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이번 조사를 계기로 셋톱박스 회사들은 대기전력을 포함해 에너지소비량을 고려한 제품을 추가적으로 개발하기 위한 투자를 강화하는 등 소비자의 요구에 좀 더 귀를 기울이는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국내 셋톱박스 회사들은 미국과 유럽 등 이미 에너지절약 규제를 강화하고 나선 선진시장에 수출하기 위해 이미 대기전력 1W 이하 제품군을 다수 확보하고 활발히 생산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조사 내용에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셋톱박스 회사들은 신흥시장에 수출하는 일부 제품의 경우, 고객 요청에 따라 대기전력 기능을 뺀 제품을 생산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셋톱박스 제품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주문자 요청이 반영된 것이다. 때문에 모든 셋톱박스 제품을 '전기흡혈귀'로 취급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게 업계 공통된 목소리다.
셋톱박스 업계는 이번 조사로 소비자들에게 강하게 각인된 '셋톱박스는 전기흡혈귀'라는 불명예를 씻어내길 원한다. 한국전기연구원은 이렇듯 특정 가전업계의 억울함이 없도록 내년부터 조사대상 가전제품의 제조사와 모델명 등 조사의 정확성과 공신력을 높이기 위한 보다 구체적인 데이터를 제시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