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상법개정안, 모범답안 아니다

[기자수첩]상법개정안, 모범답안 아니다

정지은 기자
2013.08.25 17:27

상법개정안이 25일 입법예고 기간을 넘기고 본격 입법절차에 들어간다. 재계가 지난 22일 상법개정안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며 공동 건의문을 내놓았지만 아직까지 정부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정부가 재계의 의견을 고려해 상법개정안 완화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기업 지배구조를 손질하겠다는 방침에는 변함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현행 상법에도 수많은 장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단 법부터 바꾸는 것이 과연 최선일까.

물론 대주주와 경영진의 전횡을 견제하고 소액주주의 권한을 강화한다는 개정 취지에는 재계 역시 공감하고 있다. 다만 새로운 법을 만드는 것이 능사일 수는 없다.

면밀히 따져보면 기존 장치로도 충분히 규제가 가능하다. 감사위원의 독립성 확보를 위한 현행 상법상의 장치들은 다른 선진국들의 입법례와 비교했을 때 결코 부족한 수준이 아니다. 만약 감사위원 독립성 확보 수준이 현실적으로 부족하더라도 집행 방식을 점검하는 것이 먼저다.

더군다나 상법개정이 이뤄진지 1년밖에 되지 않은 상황에서 제도가 정착하기도 전에 또 다른 제도로 덧칠하려는 상황이다. 개정이 아닌 현행 장치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고려해보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외에도 이번 상법개정안은 국내 경제와 기업들의 현실이 고려되지 않은 부분이 많다. 세계 어느 나라도 우리 상법개정안처럼 특정 지배구조를 강요하지 않는다. 기업들이 감당할 수 있는 한도를 벗어난 규제는 부작용만 낳을 뿐이다. 국내 기업 경영권이 약화돼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 될 수도 있다.

일각에선 최근 주요 재벌기업 총수들이 배임과 횡령, 탈세 등의 혐의로 구속 내지 실형 선고를 받았으니 기업 지배구조 개선은 마땅하다고 주장한다. 애초에 재벌 총수들이 비리를 저지르지 않았다면 정부가 상법개정에 나섰겠느냐는 지적이다.

이 지적에도 일리는 있다. 기업들도 정부 탓만 할 게 아니라 불법행위를 근절하는 자정 노력에 힘써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기업 옥죄기'가 심해져도 재계의 호소는 엄살로 치부될 수밖에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오는 28일 10대그룹 총수들과 청와대에서 오찬 회동을 갖는다. 이날 투자와 고용 등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면서 규제와 관련된 얘기도 오갈 것으로 보인다. 국가 경제라는 큰 숲을 보며 기업들의 자율적인 투명 경영을 유도하는 방향의 의견들이 오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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