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보는세상]

“우리는 동양과는 다릅니다”
요즘 대기업 홍보담당자들이 가장 자주 쓰는 말이다. STX그룹에 이어 동양그룹까지 구조조정에 돌입하면서 투자자는 물론 언론들도 다음 타자가 과연 누가될 것인지에 온통 관심이 쏠려 있어서다.
지금은 어느 기업이라도 동양과는 같은 도매금으로 묶이는 순간 살아나기 힘든 상황이다. 동양의 경우 구조조정 과정에서 총수 일가가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각종 편법을 동원한 정황까지 드러나고 있어 이미지에도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제2의 동양’을 찾으려는 분위기 때문에 최근 여러 기업들이 곤욕을 치르고 있다. 지난 11일 금융감독원이 동부그룹 금융계열사를 대상으로 점검에 나서기로 했다는 내용이 보도됐다. 금융계열사들이 회사채와 기업어음(CP)을 인수하거나 판매했는지 살펴보겠다는 내용이었다.
보도 내용은 ‘문제가 없는지 살펴보겠다’는 것이었지만 동양의 악몽 탓인지 사람들 뇌리에는 ‘문제가 있으니 살펴보겠다’는 것으로 각인됐다.
하지만 동부의 경우 계열사 가운데 CP를 발행한 회사가 없기 때문에 애초에 금융계열사를 통한 판매가 불가능한 구조다. 또 회사채를 일부 인수한 것은 맞지만 30% 수준으로 다른 증권사와 비슷한 수준인데다 모두 투자적격 등급이어서 동양과는 다르다는 것.
다행히 금감원이 12일 공식 해명자료를 통해 동부그룹 금융계열사를 상대로 실태 점검에 나설 계획이 없다고 밝히면서 해프닝으로 일단락됐다.
하지만 기업들은 여전히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자금난 악화’나 ‘유동성 위기’라는 얘기가 돌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불안감 때문에 채권자들이 만기 연장대신 자금 회수에 나서게 되면 상황을 잘 아는 금융회사들도 같은 배를 탈 수밖에 없다. 만약 늦게 행동에 나섰다가 최악의 경우 회사가 망하는 날에는 여신 담당자도 책임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 상황은 흡사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와 닮은꼴이다. 일시적으로 유동성 위기에 내몰린 기업을 회생시키기 위해 정부와 채권단이 나섰지만 지원대상에 포함된 것이 알려지는 순간 부실기업으로 낙인찍히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 때문에 가지고 있던 자금조달 계획은 휴지조각이 되거나 더 높은 이자를 물어야 하는 것으로 수정됐다. 계열사 매각을 통해 자금을 마련하려던 계획도 무산되거나 헐값에 넘겨야 하는 상황도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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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기업 재무팀 관계자는 “삼성이나 현대차 등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면 자금난 루머가 퍼졌을 때 휘청거리지 않을 회사는 많지 않다”며 “한번 퍼진 소문은 아무리 해명을 해도 시장이 믿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제2의 동양 사태는 막아야 한다. 정부나 채권단 모두 이를 위해 위험성이 있는 기업들을 보다 면밀히 들여다보겠다는데 이의를 제기할 생각은 없다. 다만 ‘선제적 대응’이 제2의 동양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자칫 만들어 낼 수도 있다는 점은 다시 생각해 볼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