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채권은행이 구조조정을 요구하면서 자금조달이 쉽지 않은 점을 이용해 고금리로 지원하는 것은 재고돼야 한다. 회생은 커녕 채권단 좋은 일만 시켜주고 기업은 더 골병이 든다." 채권단과 워크아웃 협약을 맺은 한 대기업 임원의 발언이다. 업황악화 등 여러 이유로 경영난을 겪는 기업들의 시각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사정을 들어보면 딱히 틀린 말은 아니다. 현대상선은 최근 보유한 현대증권 지분 22.4% 중 14.9%를 KDB산업은행과 신탁방식으로 매각하기로 합의하고 2000억원을 지원받았다.
현대증권 주식을 담보로 SPC(특수목적법인)가 대출을 일으켜 자금을 현대상선에 지급하는 형식이다. SPC가 끼어 복잡해 보이지만 핵심은 현대상선이 현대증권 주식을 담보로 돈을 빌리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현대상선은 2140억원 규모의 연대보증을 섰고 7%의 금리를 수용했다. 산업은행 입장에서 보면 담보를 잡고 연대보증까지 세우면서 금리도 낮지 않게 받은 게 성과일 수 있다.
거꾸로현대상선(20,950원 ▼150 -0.71%)은 시장에서 돈을 빌리기 쉽지 않다는 점 때문에 할 수 있는 건 다해줬지만 뭔가 개운한 느낌은 아닐 터다. 이렇게 해서 확보한 자금은 투자 등 기업의 경쟁력을 개선하는데 쓰이기보다 만기가 돌아오는 빚을 갚는데 우선적으로 쓰인다.
대한전선(43,550원 ▲700 +1.63%)의 사례가 그러했다. 과도한 부채와 신용등급 하락 등으로 대한전선은 2012년 산업은행을 비롯한 채권단으로부터 4300억원을 연 7%에 지원받았다. 시흥동 공장부지 등 알짜자산을 모두 팔아서 빚과 이자를 갚았지만 상황은 더욱 안 좋아졌다. 채권단이 협조융자 이자를 4% 수준으로 낮췄을 때 턴어라운드 가능성은 더 줄었다. 턴어라운드 가능성이 더 줄었을 때에야 채권단은 협조융자 이자를 4% 수준으로 낮춰줬다.
현대상선도 해운업이 여전히 부진한 상황에서 의미 있는 수익을 내지 못하면 증권계열사가 됐든 LNG운송사업부문이 됐든 자산을 판 돈은 만기상환용에 불과해진다. 게다가 자산매각으로 외형과 수익성이 쪼그라들었는데 금리마저 높다면 흑자전환은 더욱 요원할 수 있다.
어찌보면 시장에서 투기등급으로 평가받는 기업에 돈을 빌려주면서 높은 금리를 받는 것 자체는 당연할 수 있다. 그러나 주채권은행이 위험을 함께 떠안기보다 기업에게 부담을 넘기고 보려는 방식이 바람직한 구조조정일 수는 없다. 전혀 떠안지 않으면서 기업에 모든 부담을 전가하는 것이 구조조정일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