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인구절벽-사람들이 사라진다]<1>일할사람 줄어든다

#2032년 9월 어느 날, 대한중공업(가칭)에서 반평생을 보낸 김절벽씨는 조선소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김씨가 일하던 조선소의 초대형 골리앗 크레인이 해체돼 중국으로 떠나는 날이기 때문이다.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크레인의 마지막 부품이 운송 선박에 실리자 김씨와 동료들은 오열했다. 헬리콥터를 타고 이 장면을 생중계하던 방송기자는 외쳤다. "크레인이 울고 있습니다. 조선업계의 패권이 한국에서 중국으로 완전히 넘어가는 순간입니다!"
김씨가 대한중공업에 입사했던 시절만 해도 한국의 조선업은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였다. 수주량에서 일본을 제쳤고 기술력에서도 가장 뛰어났다. 시간이 흐르면서 물량공세를 앞세운 중국에 수주량 1위를 내줬지만 질적인 면에서는 확고한 우위를 차지했다.
김씨가 40대에 접어들면서 이런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현장에서 20∼30대 직원들을 찾아보기가 갈수록 어려워졌고 그나마 입사했던 젊은이들은 얼마 되지 않아 정보기술(IT)이나 서비스 분야에서 일자리를 알아본다며 사표를 냈다.
주조와 용접 등을 담당하던 중소협력업체에선 이미 오래 전에 젊은이들이 사라져버렸다. 일할 사람이 줄자 선박을 건조하는 시간은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최고의 기술력은 전수받을 사람이 없어 사라지게 생겼다. 반면 젊은 인력이 대거 투입된 중국 조선업은 어느덧 질적인 측면에서도 한국을 추월했다. 선주들은 점차 한국 조선소를 꺼리기 시작했다.
"배 만드는 데 평생을 바쳤습니다. 세계 최고라는 자부심을 갖고 최선을 다했죠. 그런데 이젠 일할 사람이 없어 조선소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이랍니다. 이대로 가면 한국에서 조선업은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건가요." 김씨는 중국으로 떠나는 운송선박을 바라보며 긴 넋두리를 쏟아냈다.
아직까지 대한중공업의 사례는 가상 시나리오일 뿐이지만 암울한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다. 현대중공업이 2002년에 스웨덴의 항구도시 말뫼에 위치한 조선업체 코쿰스의 골리앗 크레인을 1달러에 인수하면서 '말뫼의 눈물'이라는 표현이 나왔듯 '울산의 눈물'이 현실로 닥칠 수도 있다. 한국 사회가 인구절벽의 낭떠러지로 다가서면서 산업 내 지각변동이 예고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금까지 한국의 경제성장을 이끌어온 조선과 철강, 자동차 등 제조업 기반 자체가 흔들릴 것이라는 부정적인 전망이 나온다는 점이 걱정스럽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ECOS)에 따르면 2013년 기준으로 국내총생산(GDP)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8.7%다. 서비스업(53.5%)에 이어 두 번째로 크다. 2000년대 초반 25% 안팎에서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고용통계에서도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높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올해 7월 기준으로 경제활동인구 2597만9000명 중 16.8%인 435만6000명이 제조업에 종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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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노동인구와 소비인구가 급감하는 인구절벽이 도래하면 생산과 수출 중심의 제조업은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우선 제조업 노동자들의 고령화에 따른 대외경쟁력 약화가 불가피하다. 고용노동부의 2013년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를 보면 제조업 노동자 2명 중 1명(49.9%)은 40대 이상이다. 한국고용정보원의 전망대로 2030년에 경제활동인구의 평균 나이가 49.2세로 높아지면 제조업 전반은 노동력 고령화로 인한 생산성 하락과 기술 전수 중단 등 부작용에 시달릴 수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55세 이상 근로자의 임금은 34세 이하 근로자보다 3배 이상 높지만 생산성은 34세 이하 근로자의 60%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조선업의 패권이 북유럽에서 일본, 일본에서 한국으로 넘어온 결정적인 원인도 이 같은 노동력의 고령화에서 찾고 있다.
허문구 산업연구원 지역발전연구센터 연구원은 "취업자들의 평균 연령이 높아지면 노동생산성이 떨어져 국가 전체의 성장잠재력이 저하되고 이 경우 조선, 자동차 등 주력 제조업종이 큰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면 돈 쓸 사람도 덩달아 감소한다는 사실도 제조업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 더 이상 '대량생산-대량소비'라는 성공 방정식이 유효하지 않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생산가능인구는 2016년 3704만명을 정점으로 줄어들기 시작하고 소비가 전 연령대에서 가장 많아지는 45~49세 인구 역시 2018년 436만명에서 꾸준히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소비정점인구 비중은 2010년 8%대에서 2040년에는 6%대로 떨어진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특임교수는 "인구구조 변화에 따라 제조업에 대한 수요는 감소할 수밖에 없다"며 "이제 '대량생산-대량소비' 중심의 사고방식은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인구 고령화로 저성장 기조에 빠지게 되면 전체 인구의 가처분소득 자체가 줄어드는 점도 문제"라며 "이는 제조업에 대한 수요를 급감시키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말뫼의 눈물: 현대중공업이 2002년에 스웨덴의 항구도시 말뫼에 있는 조선업체 코쿰스의 골리앗 크레인을 1달러에 인수한 사건을 이르는 말. 스웨덴 조선업의 쇠락으로 조선소가 문을 닫자 코쿰스는 크레인을 매물로 내놨지만 막대한 해체 및 운송비용 탓에 방치되다 현대중공업의 품에 안겼다. 스웨덴 언론은 크레인이 해체돼 울산으로 떠나던 날 '말뫼가 울었다'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이를 계기로 이 크레인은 '말뫼의 눈물'로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