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국내 소재·장비업체, '늑대'로부터 보호하려면

[기자수첩]국내 소재·장비업체, '늑대'로부터 보호하려면

박소연 기자
2019.07.25 16:35

日 수출규제, 기회로 삼아야

"혁신엔 원래 신뢰가 없다. 신뢰는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혁신해놓으면 신뢰가 없다고 죽여버린다."

최근 만난 중소 반도체기업 관계자는 한국의 소재·장비 산업 경쟁력 저하와 관련해 "기득권에 눌려 혁신이 시장에서 통하지 않는 게 문제"라며 이같이 말했다. 중소기업이 신기술을 개발해도 대기업이 그간 신뢰관계를 쌓아온 일본 기업과 거래를 선호해 현재의 위기를 자초했다는 지적이다.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가 시작된 이후 3주간 이 사안을 보는 대중의 시각은 변화를 겪었다. 처음엔 일본의 조치를 보복으로 규정하고 한국의 예상 피해를 산정하는 논의가 주를 이뤘다. 분노와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점차 이번 일을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 1위 국가'라는 구호에 가려져 보지 못한 '민낯', 한국의 소재·부품·장비 자급률의 실체가 대중에 드러난 것이 변화의 시작이 될 수 있다는 목소리가 업계에서 나온다. 이는 국내 업체들의 역량이 충분하다는 인식에 근거한다.

최근 '초고순도 불화수소' 기술이 국내 중소업체에서 8년 전 개발됐지만 자금 부족과 납품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생산이 좌절됐단 사실이 알려졌다. 이런 사례는 차고 넘친다. 대부분 연매출 3000억원대 이하인 국내 소재·장비업체가 생산라인을 갖추고 수차례 테스트를 통과해 기술을 상업화하기는 어렵다.

대기업 중심의 수직계열화, 수요 독점적 시장 구조, 중소기업의 국내외 경쟁사 납품을 견제하는 폐쇄적 생태계도 국내 소재·부품업체의 목을 졸라왔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 D램도 처음부터 세계 1등 하진 않았다. 어려운 시기엔 국민이 힘을 모아 위기를 극복했다"며 "아무리 훌륭한 아이도 스스로 방어능력이 생길 때까지 어머니가 돌봐주지 않으면 늑대한테 잡아먹힌다"고 말했다. 시장논리에 우선하는 정부 정책이 필수적이란 의미다.

이번 기회에 훌륭한 기술력을 갖춘 국내 소재·장비업체가 자본에 구애받지 않고 테스트베드에서 마음껏 실력을 쌓아 세계에서 인정받는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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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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