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해외 사업장부터 납품업체나 협력사 탄소배출량까지 모두 공시하는 것은 부담이 지나칩니다."(제조기업 관계자)
국내 기업들이 연말 확정을 앞둔 국제회계기준(IFRS)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공시기준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를 낸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중시하는 ESG가 경영 트렌드로 부상했으나 공개된 초안이 당초 예상보다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면서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재계와 학계는 국내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일률적이고 급진적인 기준 적용은 자칫 기업의 성장동력을 저해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31일 재계에 따르면 영국 런던의 국제회계기준재단이 최근 발표한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의 지속가능성 공시기준 초안을 두고 국내 기업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ISSB는 의견 수렴을 거쳐 초안을 다듬은 뒤 연말 최종안을 확정한다. 공개 초안의 주요 내용에는 기업의 지속가능성 관련 정보와 기후 관련 구체적 요구사항(68개 산업별 지표 등)을 공시할 것 등이 포함됐다.
국내 기업들은 이같은 ESG 기준 초안이 예상보다 부담이 크다는 입장이다. 초안이 가치사슬 전체의 지속가능성 관련 정보를 요구하기 때문에 범위가 지나치게 넓다는 의미다. 국내 사업장은 물론 해외에 있는 사업장이나 종속기업의 정보를 파악해 공시 대상에 포함해야 해 부담이 커질 우려가 있다. 대상 범위를 거래 관계인·협력업체로 규정한 유럽연합(EU)의 '기업 지속가능성 실사 지침'과 비교해도 광범위하다.
온실가스 배출 공시 규제가 과도하다는 점도 부담이다. 초안에 따르면 본사는 스코프(scope) 1·2·3에 규정된 관계기업과 공동기업, 금융투자 등의 모든 배출량을 공시해야 한다. 본사의 공장에서 사용되는 화석연료뿐만 아니라 납품업체, 협력사, 외부 사용까지 모두 측정해 일괄 보고해야 한다는 의미다.
국내 현실 고려 없이 도입할 경우 공시기준이 되레 성장동력을 저해할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대한상의가 국내 20대 그룹과 주요 은행 17개사를 대상으로 시행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73.0%가 '기업 부담 가중을 우려해 ISSB 공시기준을 점진적으로 적용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손경식 경총 회장도 ESG경영위원회에서 "국내 여건에 맞게 탄소중립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계도 재생에너지 확보가 어렵고 인적자원이 부족한 국내 상황을 감안할 때 공시기준이 국내기업들의 발목을 잡을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기업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ESG 세계기준을 국내에 일괄 적용할 경우 막대한 비용이 소모될 가능성이 있다. 생산규모가 큰 기업의 경우 사업장 신설과 증축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량을 예측해 계획을 세우기 어렵다는 점도 우려스럽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ESG기준이 세계적인 흐름이 됐기 때문에 당연히 국제 기준을 따라야 하겠지만 일부 기준은 기업 부담이 과중해질 수 있다"며 "중국 등 ESG 비용 소비가 적은 국가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과도한 비용을 소비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