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임기자가 판다/기업가문 재산분할(상)]기업가문 승계자에 몰아주기…1970년대 기업공개 지분분산 정책 영향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사이의 대법원 이혼소송 심리가 진행되는 가운데 기업가문의 재산상속 형태와 이를 기반으로 한 부부재산 분할 방식에 관심이 쏠린다.
우리나라의 경우 유교적 문화의 특성상 장자나 가업 승계권자에게 기업가문 재산의 상당부분을 물려주는 전통이 있었다. 가업 승계자가 이혼이나 사망으로 상속재산분할의 다툼이 있을 때 그의 재산을 개인소유로 볼지, 기업가문의 공동 재산으로 볼 것이냐가 쟁점이 되기도 한다.
약 1조 4000억원의 재산을 분할 지급하라는 항소심 재판부의 판결에 불복한 최 회장은 현재 자신의 추정재산이 부부공동의 재산인지, 부모로부터 상속받은 것인지, 가족구성원들로부터 위탁받은 것인지를 놓고 노 관장 측과 다툼을 벌이고 있다.
노 관장 측은 모친인 김옥숙 여사의 메모에 '선경(현 SK) 300억원'이라는 표시를 근거로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SK에 전달됐고 이 돈이 SK성장에 크게 기여했기 때문에 SK㈜ 주식도 재산분할 대상이라는 입장이다.
반면 최 회장은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300억원을 수령한 적이 없고, 최종현 선대 회장의 상속재산이 재산형성의 핵심 재원이라고 주장했다. 최 선대회장으로부터 경영권 승계를 목적으로 증여받은 2억 8000만 원이 SK㈜의 모태인 대한텔레콤 주식을 취득하는데 사용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 민법상(830조 1항) 상속받은 재산은 '특유재산'으로 분류돼 부부공동 재산의 분할 대상이 아니다. 1심은 이 주장을 받아들여 SK㈜ 의 주식은 재산분할 대상이 아니라고 했지만, 항소심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특히 기업가문의 형제-사촌간 합의에 의해서 한사람에게 몰아줬던 경영권 지분이 누구의 소유인지에 대한 것도 쟁점이다. 국내 기업의 경우 1970년대 정부의 기업공개 및 대주주 지분 분산 방침에 따라 지분을 잘게 쪼개서 소유했고 경영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장자나 후계자에게 지분을 몰아주는 관행이 있었다.
노 관장 측은 최 회장이 동생과 사촌 형제들에게 이미 나눠준 1조원 가량의 재산(지분)도 부부공동의 분할대상 재산이라고 주장해 2심 법원이 이를 받아들였지만 최 회장 측은 이는 부부공동 재산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기업가문의 가족들이 경영권 지분을 장자나 후계자에게 몰아주는 것은 SK 뿐만 아니라 LG의 상속재산 소송에서도 쟁점이 되고 있는 대목이다.
SK의 경우 2018년에 이미 최 회장이 형제와 사촌에게 나눠준 보유추정재산 약 1조 1100여억원(증여주식, 대여, 배당금)과 아직 최 회장에게 소유권이 넘어오지 않은 SK실트론 TRS(총수익스왑) 파생상품(약 7500억원) 등 1조 8600억원은 실제 보유재산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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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소심 법원이 추정한 4조 115억원 중 이를 제하면 실제 재산은 2조 1500억원 정도다. 이를 기초로 하면 항소심에서 결정한 노관장의 재산분할액 1조 3800여억원은 부부공동 재산의 64%에 달한다. 반면 현재 최 회장은 실제 보유한 총 재산 중 36%만이 그의 몫이 된다는 얘기다.

선경(현 SK)의 창업자인 최종건 창업회장이 1973년 11월 타계한 후 형의 경영권을 이어받은 최종현 SK선대 회장도 25년 후인 1998년 8월 26일 세상을 떠났다.
최 선대 회장의 사망 이틀 후인 28일 최윤원·신원·창원 등 최 창업 회장의 아들들과, 태원·재원 등 최 선대 회장의 두 아들 등 총 5인은 가족회의를 열고 패밀리(Family) 합의서를 작성했다. 이 자리에서 이들은 최태원 당시 SK 부사장을 SK그룹 및 패밀리 대표로 추대하기로 합의했다.
당시 가족 회의에서 장자였던 고 최윤원 SK케미칼 부회장이 사촌동생인 최태원 부사장을 가족 대표로 삼기로 뜻을 모으면서 많은 기업에서 벌어졌던 가족간 경영분쟁 없이 SK 그룹은 26년간 안정적인 성장을 이어올 수 있었다.
최태원 회장의 동생들이자 공동상속인들(재원·기원)은 상속재산분할 협의를 통해 최 선대 회장이 보유하고 있던 SK그룹 계열사들의 주식 대부분을 최태원 회장이 상속받을 수 있게 했다. 그리고 1998년 9월 1일 최종현 선대 회장의 뒤를 이어 최태원 회장이 SK 그룹 총수에 올랐다.
이들이 맺은 '선대 회장 사후 SK 그룹 지배권 승계에 관한 합의서'를 보면 총 5개 항목에서 SK 기업가문의 공동경영 시스템이 잘 소개돼 있다.
제1항은 '최태원에게 그룹의 경영권을 위임하여 대내외적으로 회사와 패밀리(Family)를 대표하게 한다'고 돼 있다. 제2항은 '패밀리 대표가 경영권을 올바르게 행사할 수 있도록 최종현 회장의 주식을 포함한 일체의 재산과 부채를 상속한다. 이 상속의 의미는 소유에 대한 상속이 아니며, 그룹의 경영에 대한 대표권을 위임하는 것을 뜻한다'고 기재돼 있다.
제3항은 패밀리 대표의 역할 △제4항에는 패밀리 대표의 주요 의사결정사안에 관한 패밀리와의 사전협의 의무 △제5항에는 차기 패밀리 대표에 대한 우선권 등에 관해 기재돼 있다.
최 회장은 당시 지주사 역할을 하던 SK상사(현 SK네트웍스) 지분 2.85%를 비롯해, SK증권(459만주)과 SKC(392만주), SK주식회사(4만주) 등 주요 상장사 지분과 최종현 회장이 보유한 비상장사 지분(납입자본금 총액 중 16%)을 합쳐 당시 1000억원이 넘는 주식을 상속받았다.
여기에 워커힐 미술관의 미술품과 경기도 이천 농장 등을 합해 상속세만 600억원(최고세율 45%)을 넘게 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족간 협약에 따라 사촌들의 경영권과 관련한 권리와 동생들의 상속분까지 모두 최 회장이 물려받아 오늘에 이른 것이다. (하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