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K실트론 매각 전면 재검토에 들어간 SK그룹이 장고를 거듭하고 있다. 최태원 회장이 주문한 AI(인공지능) 속도전을 뒷받침하기 위해 세계 3위의 웨이퍼(반도체 칩을 만드는 얇은 원판) 제조사인 SK실트론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는 내외부 지적에도 매각 가격 인상 등 협상의 여지를 열여두려는 움직임이 감지된다. 이를 두고 사업 불확실성 해소를 위해 빠른 결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SK그룹 지주사인 SK㈜는 최근 내부 투자·전략회의를 열고 SK실트론 매각건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SK실트론 문제를 조만간 예정된 이사회에 올리지 않고, 시간을 두고 협상 재개 여부를 결정하자는 방향으로 의견을 주고받았다는 전언이다.
당초 SK그룹은 SK㈜가 보유한 SK실트론 지분 51%와 총수익스와프(TRS) 계약 지분 19.6% 등 70.6%를 두산그룹에 매각하는 방안을 추진해왔다. 그룹 리밸런싱 차원에서 반도체 기본재료인 웨이퍼를 만드는 SK실트론을 처분해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취지다.
하지만 이같은 SK실트론 매각 작업은 지난달에 제동이 걸렸다. AI 중심 사업 재편이 재계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데다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사업이 분기당 수십조원을 벌어들이는 슈퍼싸이클(초호황기)을 맞은 상황에서 그룹 내 AI 사업 밸류체인(가치사슬)의 핵심 축인 SK실트론 매각은 상식적으로 맞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재계 관계자는 "지난달 28일쯤 최종 딜 체결이 예상됐었는데, SK측이 협상 테이블에서 일어나버린 상황"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최 회장이 올 들어 AI 속도전을 주문하고 있는 만큼 그룹 내부에서는 오히려 SK실트론과의 시너지를 찾는데 주력해야 한다는 의견이 힘이 실리고 있다. 앞서 최 회장은 지난 11~13일 주재한 '뉴 이천포럼'을 통해 SK그룹이 AI 시대에 필요한 △메모리 △데이터센터 인프라 △에너지 △전기화 능력을 풀스택(full stack)으로 갖췄다고 평가하며 "지금 전속력으로 전방위적인 AI 전환을 실행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맞이한 절호의 기회는 다시 쉽게 오지 않을 것"이라고 독려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뉴 이천포럼' 직후 SK실트론 매각 백지화가 공식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지만, 그간 매각을 주도해온 SK㈜ 등을 중심으로 SK실트론 가치 재산정을 통한 매각가 상향 조정 등을 이유로 들며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단 SK와 두산이라는 대기업간의 약속을 뒤집는 것도 부담인데다 SK실트론의 총차입금이 3조원에 달하는 상황이라 매각을 통해 그룹의 재무적 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측면에서다.
특히 SK실트론 이슈는 2023년 이후 사실상 리밸런싱을 주도해온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의 거취까지 연결될 수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SK실트론 매각 성사가 사실상 그의 마지막 과제 격으로 여겨져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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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과거 웨이퍼 부족으로 심각한 상황을 겪었던 트라우마가 있는 SK하이닉스(2,764,000원 ▲79,000 +2.94%)가 AI 밸류체인 강화가 절실하다는 의견을 강하게 내고 있고, 업황 부진에 시달렸던 SK이노베이션(102,400원 ▼1,100 -1.06%) 등 그룹 주요 계열사 대부분이 실적 반등으로 개선세가 뚜렷해 당초 SK실트론 매각이 필요했던 시점과는 상황이 분명히 달라졌다는 평가다. SK(724,000원 ▲37,000 +5.39%)그룹의 미래 경영 화두가 리밸런싱 등 '긴축'보다는 AI 팩토리 구축과 같은 '확장'으로 급격히 전환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미 SK그룹 내부에서는 지나친 장고가 오히려 악수가 될 수 있다는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SK실트론 매각건은 SK도, 두산도 모두 연계된 이슈이기 때문에 질질 끌어서 좋을게 없다"며 "숙고의 시간이 길어질 수록 AI 시장 대응에 대한 골든타임만 줄어드는 꼴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SK㈜는 지난 15일 SK실트론 매각과 관련한 미확정 공시를 통해 "세부 사항은 우선협상대상자인 ㈜두산과의 협의를 통해 결정할 예정"이라며 "추후 관련사항이 확정되는 시점에 재공시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