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정유·석유화학 업계가 올해 상반기 약 80조원 규모의 수출 실적을 올렸다. 반도체 호황 속에서 정유·석유화학이 역대 최대 상반기 수출 달성의 '숨은 주역'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는 평가다. 정부의 내수 공급 안정 기조에 따라 국내 시장을 우선 지원하면서도 수출 경쟁력을 유지한 결과다.
5일 산업통상자원부의 '2026년 상반기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올 상반기 전체 수출은 4967억 달러(약 767조원)로 전년 동기 대비 48.4% 증가하며 역대 상반기 최대치를 기록했다. 반도체 수출이 1924억 달러(약 295조원)로 162.6% 늘어난 가운데 석유제품 수출은 301억 달러(약 46조원)로 39.6%, 석유화학 수출은 228억 달러(약 35조원)로 5.2% 증가했다. 두 품목의 수출액은 상반기 전체 수출의 약 10.6%를 차지한 수준이었다.
이번 실적은 국제유가 상승에 따른 수출 단가 효과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중동 전쟁 이후 정부가 국내 석유 수급 안정과 가격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삼으면서 정유·석유화학 업계는 휘발유·경유 등 주요 제품의 내수 공급을 우선해야 했다. 수출 확대에 제약이 있는 어려운 여건에서도 내수 공급과 수출을 병행하며 80조원 규모의 수출을 기록하는 호실적을 보인 것이다.
석유제품과 석유화학 수출이 동반 증가한 것은 고부가 제품 중심의 포트폴리오 조정과 생산·운영 효율을 높인 결과로 분석된다. 실제 국내 정유사들의 석유제품 수출은 항공유 등 고부가 제품 수출 호조에 힘입어 3월 89%, 4월 39%, 5월 51%, 6월 50%(전년비) 늘어왔다. SK에너지·GS칼텍스·S-OIL·HD현대오일뱅크는 세계 최고 수준의 정제설비와 운영 효율을 바탕으로 제한된 여건 속에서도 수출 물량과 제품 포트폴리오를 탄력적으로 조정했다. 정유 4사의 하루 총 정제능력은 336만 배럴로 세계 5위 수준이다.
석유화학도 의미 있는 반등세를 보였다. 석유화학 수출은 지난해까지 중국발 공급 과잉과 글로벌 수요 둔화 여파로 부진을 겪었지만 올해 3월 이후에는 매달 10% 안팎의 증가세를 기록하며 상반기 전체 수출 확대에 힘을 보탰다. 나프타 등 기초원료의 국내 공급 의무가 유지되는 상황에서도 범용 제품뿐 아니라 고부가 소재 중심으로 수출 회복 흐름을 만들어냈다.
정부의 최고가격제 정책 기조에 정유사들이 적극 협조하며 물가안정에 기여하는 가운데 거둔 성과다. 정부는 지난 3월부터 석유제품 최고가격제를 시행하고 있다. 이 제도가 없었다면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실제 3.2%보다 0.4%포인트 높은 3.6%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정유사들이 결과적으로 민생물가 안정에 힘을 보태면서도 외화까지 벌어온 모양새"라며 "정유·석유화학은 위기 때마다 국내 에너지 안보와 산업 공급망을 먼저 책임져야 하는 업종인데, 이번 상반기 실적은 정부 정책에 협조하면서도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제조업의 경쟁력을 입증한 사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