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햇빛이 좋고 바람이 잘 부는 날, 조금 역설적인 일이 벌어진다. 재생에너지로 만든 전기는 남는데, 제주 곳곳에 세워진 전기차는 그 전기를 충분히 담지 못한다. 전기는 남고 차도 멈춰 있지만 두 자원이 만나지 못하는 것이다.
지난 7월 정부는 재생에너지가 남는 시간대에 전기차와 히트펌프의 전력 사용을 유도하는 제도를 제주에서 시범 운영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아직 구체적인 요금과 시행방식은 나오지 않았지만 방향은 기대할 만하다. 전기차를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전력망의 여유에 반응하는 자원으로 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전기가 자원이라면 남는 자원은 버릴 것이 아니라 필요한 시간과 장소에서 활용해야 한다. 전기는 창고에 쌓기 어렵지만 제주에는 전기를 담을 수 있는 수많은 전기차 배터리가 있다. 낮에 남는 전기를 차에 담으면 도민의 퇴근길과 관광객의 다음 여행을 움직인다. 오늘의 잉여전력을 내일의 이동에 투자하는 셈이다.
정책은 기술용어보다 생활의 언어로 전달돼야 한다. "제주에 남는 전기를, 전기차에 남깁니다." 이 한 문장이면 충분하다. 재생에너지가 풍부한 시간에는 충전요금을 낮추고, 관광지와 공공시설에서는 낮 시간대 충전을 권장할 수 있다. 렌터카를 지정시간에 충전해 반납하면 혜택을 주고, 숙박시설에서는 이용자가 원하는 출발시간에 맞춰 자동으로 충전되게 할 수 있다. 충전기와 관광 앱에 실시간 요금과 권장시간을 표시하고, 참여한 만큼 제주 포인트를 지급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이 포인트가 전통시장과 카페, 관광시설에서 사용된다면 남는 전기는 지역의 소비도 남긴다. 관광객은 재생에너지로 달리는 제주여행을 경험하고, 도민은 보다 저렴하게 이동하며, 지역상권은 새로운 고객을 만난다. 에너지정책이 교통·관광·지역경제 정책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이 구상을 '제주 전기차 생활문화 선도도시' 프로젝트로 확장해볼 만하다. 충전기 설치 대수만 셀 것이 아니라, 재생에너지가 남는 시간에 충전된 전력량과 참여자 수, 지역 소비, 이용자 만족도까지 성과로 관리하는 것이다. 전기차 보급을 선도해온 제주가 이제는 전기차를 가장 지혜롭게 사용하는 도시로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한다.
남는다는 것은 낭비만을 뜻하지 않는다. 잘 활용하면 남는 것은 여유가 되고, 그 여유를 시민과 관광객의 혜택으로 돌리면 배려가 된다. 제주에 남는 전기는 충전비만 낮추는 자원이 아니다. 대한민국이 따라갈 새로운 에너지 생활문화를 남길 미래 투자다.
독자들의 PICK!
남는 전기로 미래를 남기는 제주. 버려질 수 있었던 에너지를 더 나은 이동과 생활로 바꾸는 것. 그것이 제주가 대한민국에 보여줄 수 있는 진짜 재주다. 글/조현민 이볼루션 대표

조현민
전기차 생활문화 기획자
㈜이볼루션 대표
『제4의 공간』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