칩 커질수록 가열되는 기판 경쟁

AI(인공지능) 반도체 고성능화로 패키지가 대형화되면서 발열과 휨 한계를 극복할 차세대 소재로 유리기판이 주목받고 있다. 시장의 빠른 성장 속도에 맞춰 국내 주요 부품사들이 소재 공급망 구축에 나선 가운데 중국 디스플레이 기업 BOE까지 관련 경쟁에 뛰어들면서 글로벌 주도권 다툼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모습이다.
4일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더인사이트파트너스에 따르면 유리기판 시장은 AI 반도체 패키지 구조 변화에 따라 2025년 약 2300만달러(약 329억원)에서 2034년 약 42억달러(약 6조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AI 가속기와 HBM(고대역폭메모리)을 결합하는 첨단 패키징 기술 수요가 늘면서 기존 기판을 대체할 차세대 소재에 관심이 쏠리면서다.
기존 반도체 패키징의 표준은 플라스틱(유기) 기판이다. 하지만 반도체 면적이 커지고 처리 데이터량이 급증하면서 열팽창과 휨 현상 등 물리적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고온 공정에서 유기 소재가 변형되기 쉬운데다 미세 회로 구현도 까다롭기 때문이다. 반면 유리기판은 열 변형이 적고 표면이 매끄러워 대면적·초미세 패키징에 유리하다.
이같은 이유로 글로벌 기업들은 유리기판 공급망 확보에 앞다퉈 나서고 있다. 인텔의 진출 선언 이후 국내에서는 SKC(74,100원 ▲1,300 +1.79%)(앱솔릭스)가 미국에서 고객사 인증을 진행 중이다. 삼성전기(1,208,000원 ▲27,000 +2.29%)는 지난달 30일 열린 콘퍼런스콜에서 "JV(합작법인) 설립을 위한 MOU(양해각서) 공시 이후 지난 7월 초 일본 스미토모화학 자회사인 동우화인켐과 유리기판 핵심 소재인 글라스코어 생산을 위한 합작법인 설립을 위해 본계약을 체결했다"며 "지분 66.2%를 보유하며 연내 법인 설립을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LG이노텍(514,000원 ▲1,000 +0.19%) 역시 파일럿 라인을 구축하며 기술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BOE도 지난달 21일 열린 '디스플레이 비즈니스 포럼 2026'에서 유리기판 기술 개발과 시험 생산라인 구축 현황을 공개했다. 바이 스 BOE 부최고전략책임자는 "AI 칩 크기가 계속 커지면서 기존 기판으로는 대응하기 어려워지고 있다"며 "유리가 차세대 패키징 기판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BOE는 TGV(유리관통전극)와 RDL(미세 회로 재배선), 범프 기술 등을 연구하고 있으며 시험 생산라인을 구축해 AI 산업 발전에 기여하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BOE는 2024년 투자한 파일럿 라인을 2년 만에 가동했고, 지난 5월에는 미국 코닝과 패키징 기판·광인터커넥트 개발 협약을 맺었다. LCD(액정표시장치)와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생산 과정에서 축적한 기술을 차세대 반도체 패키징 분야로 확장하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BOE의 진입이 초기에는 유리기판 생태계 확대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다만 LCD·OLED 시장에서 중국 업체들이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주도권을 넓혀온 만큼 유리기판에서도 중장기적인 경쟁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유리기판은 단순히 기존 기판을 대체하는 소재가 아니라 차세대 AI 반도체 패키징 구조를 결정하는 기술"이라며 "유리기판 경쟁은 생산 능력 확보보다 실제 고객 요구 수준을 만족하는 수율과 품질 확보가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