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엄벌행정의 '일방통행'(中)
④확정판결 4건 중 1건 법원에서 제동

#공정거래위원회는 2021년 삼성전자 등 4개 계열사가 사내급식 물량을 삼성웰스토리에 몰아줬다며 5개 회사에 과징금 2349억2700만원을 부과했다. 역대 최대 규모의 부당지원 사건이라는 오명도 붙였다. 약 4년10개월 뒤인 지난 4월 서울고법은 지원 의도와 과도한 경제적 이익 등이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며 과징금과 시정명령을 모두 취소했다. 지금은 공정위가 상고해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공정위가 과징금을 부과했다가 행정소송에서 패소해 기업에 돌려준 돈이 최근 10년간 5800억원을 넘었다. 금융권에서도 제재에 불복하는 소송이 늘면서 금융위원회의 과징금 환급이 빠르게 늘고 있다. 무리한 처분에 제동이 걸리면 과징금뿐 아니라 이자와 소송 대응에 들어간 변호사 비용까지 국고 부담으로 돌아온다.
16일 공정위의 '2025년도 통계연보'에 따르면 2017~2025년 확정된 행정소송 902건 가운데 공정위가 전부승소한 사건은 680건이다. 일부승소는 146건, 전부패소는 76건이다. 공정위는 일부승소까지 승소로 분류해 공식 승소율을 91.6%로 발표한다. 하지만 처음 내린 처분을 온전히 지켜낸 전부승소만 따져보면 승소율은 75.4%로 낮아진다. 확정판결 4건 중 1건꼴로 당초 처분의 일부 또는 전부에 대해 법원에서 제동을 건 셈이다.
문제는 처분이 법원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발생하는 비용이다. 공정위가 박성훈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7년부터 올해 7월까지 행정소송에 따라 기업에 돌려준 과징금 원금은 5547억4300만원이다. 이때 발생하는 이자 성격의 환급가산금 290억4200만원까지 더하면 총 환급액은 5837억8500만원으로 불어난다.
정부가 투입하는 소송비도 세금이다. 공정위가 이양수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외부 변호사 선임료는 2021년 28억5000만원, 2022년 29억4400만원, 2023년 29억2100만원, 2024년 30억300만원이었다. 정부는 내년에도 공정위 행정소송 수행 예산안으로 58억원을 편성했다.
금융위원회 결정에 불복하는 일도 늘어난다. 금융위가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제재 관련 신규 행정소송은 2022년 23건에서 2023년 26건, 2024년 36건, 2025년 45건으로 증가했다. 올해도 지난 5월까지 16건이 새로 제기됐다.
소송이 늘면서 과징금 환급액은 부쩍 커졌다. 금융위가 기업과 금융회사 등에 돌려준 과징금은 2022년 1억800만원에 불과했지만 2024년 6억3700만원, 2025년 7억8900만원으로 증가했다. 올해는 5개월 만에 35억6300만원을 기록해 지난해 연간 환급액의 4.5배를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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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제재가 내려지면 기업은 과징금을 손실로 떠안고 장기간 법적 대응에 나서야 한다. 처분이 뒤집히면 환급가산금과 정부 측 소송비 등 추가 비용은 국민 세금으로 돌아온다. 처분 단계부터 충분한 입증과 정교한 과징금 산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⑤쿠팡 사례로 본 공정위의 무소불위 권한

#쿠팡Inc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공시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6월 공정거래위원회가 쿠팡에 부과한 1억2100만달러(약 1628억원)의 과징금을 올해 6월 완납했다. 매출 50조원이 넘는 대형 유통사 쿠팡도 2년에 걸쳐 6회 분납해야 버틸 수준으로 '징벌적 과징금'은 이미 현실이 된 셈이다.
'재계 저승사자'로 불리는 공정위의 위세는 막강하다. 영장 없이 전격적으로 진행한 현장 조사에서 확보한 내밀한 자료를 바탕으로 시정명령과 거액의 과징금을 물리면 버텨낼 기업이 거의 없다. 공정위 처분 논리에 허점이 있거나 반론을 펴고 싶어도 '후속 제재' 우려에 입장을 내지 않는 게 관례가 됐다.
2014년 로켓배송 서비스를 도입해 유통 업계 판도를 바꾼 쿠팡은 한동안 혁신의 상징이었다. 국내 물류망에 10조원을 투자한 '계획된 적자' 전략으로 이젠 한 달에 3200만명의 고객이 사용하는 국민 플랫폼이 됐다. 하지만 최근 수년간 공정위를 비롯한 정부 규제 기관의 집중적인 규제 타깃이 되면서 쿠팡엔 '독점', '불법' 등 부정적 이미지가 확산했다.
2024년 6월 공정위는 PB(자체 브랜드) 상품 밀어주기 판매를 위한 알고리즘 조작 혐의로 쿠팡에게 1400억원대(잠정, 확정액 1억2100만달러) 과징금을 부과하고 검찰 고발했다. 공정위가 단일 유통사에 부과한 과징금 중 역대 가장 큰 규모였다.
공정위는 쿠팡이 PB 상품을 플랫폼 검색순위 상단에 노출하도록 알고리즘을 설정하고, 임직원을 동원해 구매 후기를 작성한 건 '공정한 경쟁을 저해한 불법 행위'라고 봤다. 쿠팡은 이 같은 제재 논리를 반박한다. 앱 상단에 장기 노출된 생수, 화장지, 물티슈 등 PB 상품은 알고리즘을 조작한 게 아니라 일반 제조사 대비 반값 수준이어서 가성비를 중시하는 고객들이 선택한 결과라는 것이다.
현재 2심 변론을 진행 중인 이번 사건의 재판 결과에 따라 국내에서 영업 중인 온오프라인 유통사의 '상품 진열' 전략도 대대적인 수정이 불가피하단 게 업계의 시각이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아마존이나 월마트, 코스트코 등은 온오프라인 공간에서 규제 없는 상품 진열을 하고 있다"며 "PB 상품 노출을 줄이면 고객도 손해"라고 말했다.
대규모 과징금은 자금 운용에도 큰 타격이다. 2년 만에 1600억원대 과징금을 완납한 쿠팡은 지난 6월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정보유출 사건으로 부과한 6200억원대 과징금을 또 내야 한다. 자금 여력 상 이번에도 분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후속 물류센터 투자 위축과 이에 따른 지방 고용 감소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쿠팡이 승소해도 손실이 불가피하다. 과징금을 돌려받더라도 3~5년간 이어진 소송 기간 실추한 기업 이미지 훼손, 기업가치 하락 등은 복구하기 어렵다. 작년 말 500억달러가 넘었던 쿠팡의 시가총액은 거액의 과징금과 잇단 규제, 제재 리스크가 반영되면서 최근엔 절반 수준인 270억달러대로 추락했다.
쿠팡뿐 아니라 롯데, 신세계 등 국내 대형 유통사들도 과거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납품업체 대상 갑질 의혹 등으로 공정위 제재 처분을 받고 3~5년에 걸친 법적 분쟁을 진행한 사례가 있다. 이에 불복해 승소한 사건이 있지만 공정위는 별다른 입장이 없다. 훼손된 이미지를 복구하는 건 오롯이 기업의 몫이다.
전문가들은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학 명예교수는 "공정위는 조사, 기소(심사보고서 작성), 의결(1심 판결 및 처벌)을 단일 행정기관에서 독점한다"며 "2015년~2020년 공정위 사건 처리 건수는 6910건으로 같은 기간 미국의 230건, EU의 65건, 일본의 140건과 비교할 때 과잉 개입"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최근 공정위 현장조사가 쿠팡 본사에서 거부돼 무산된 사건은 법원의 사법적 영장 없는 행정조사의 강제성과 절차적 정당성을 둘러싼 저항이며, 검사와 판사의 역할을 한 기관이 독점하는 기형적 체계의 한계를 드러낸다"고 지적했다.
⑥규제기관의 엄벌주의 항변

규제당국의 '엄벌행정'에 기업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지만 규제당국도 할 말은 있다. 최근 설탕 담합이나 밀가루·전분당 담합 등 막대한 과징금이 나온 사건 대부분은 위법행위 기간이 오래된 사안으로 관련 매출액이 불어난 과징금 규모도 클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절차적으로 피심인측의 반론권 보장을 위한 절차도 마련돼 있다는 해명이다.
16일 정부부처 등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불완전판매 사태와 관련해 11개 금융회사에 대한 제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대심제를 적용했다. 지난 2018년 도입된 대심제란,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에서 금감원의 검사국과 제재 대상자인 금융회사가 동등한 자격으로 위원들 앞에 참석해 대립 토론을 하는 심의 방식을 뜻한다.
과거에는 재재심에서 검사국 직원이 먼저 입장을 밝히고 안건을 보고한 뒤 퇴장하면 이후에 제재 대상자가 나중에 들어가 진술하는 형태로 운영돼 진술권 보장이 미흡했다. 대심제는 이를 보완하기 위한 장치로 동시 참석과 실시간 공방을 통해 충분한 반론권을 보장한다.
홍콩 ELS의 경우 금감원 제재심은 당초 1조400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지만 금융위원회의 보완 요청에 따라 과징금이 6000억원대로 낮아졌다. 금융당국이 과징금을 조정한 이유는 금융회사의 적극적인 배상 노력 등을 반영해서다. 더구나 투자자가 은행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은행이 승소한 것도 제재 수위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결국 금융당국도 행정제재를 할 때 절차적인 정당성 뿐 아니라 수용가능성 등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공정거래위원회도 마찬가지다. 공정위 관계자는 "소송에 가면 결국 법리 싸움을 해야 한다"며 "피심의인이 불복해 법정다툼으로 가면 공정위의 논리가 낱낱이 파헤쳐지기 때문에 공정위가 터무니 없는 논리를 적용하면 법리 싸움에서 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최대한 정확성을 담보하기 위해 심의 과정에서 피심인측의 소명을 충분히 듣는 과정을 거치는 등 방어권을 보장하는 이유다.
그럼에도 과징금이 역대급으로 불어난 이유는 담합 사건의 경우 위법 행위 기간 오래됐기 때문이다. 제당 3사에 부과된 설탕 담합의 과징금은 3900억원에 달했다. 담합 기간이 오래될 수록 관련 매출액이 늘어나고 결과적으로 과징금이 커진다. 최근 공정위 제재 수위가 너무 높다면서 "이례적 제재" "피심인측 입장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등의 주장이 제기된 것도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