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말, 모 백화점의 수입 브랜드 매장에서 작은 소동이 일어났다. 한 여성 고객이 반품하고 싶다며 제품을 매장 매니저에게 내놓았다. 백화점에서 반품 요청은 흔히 벌어지는 일인데다 요즘은 소비자들의 파워가 커져서 구입 시기 등 반품 규정만 지킨다면 매장에서 웬만한 반품요청은 받아들여지는 편이다. 그런데도 반품 때문에 한바탕 '소란'까지 빚어진 이유는 뭘까.
사연은 이러하다. 반품을 요청한 고객은 다름 아닌 국내 중견 의류 업체의 디자이너였다. 이 디자이너는 대기업에서 수입, 판매하는 외국 브랜드 매장에서 옷을 구입했다. 옷을 산 이유는 입기 위해서가 아니라 '일' 때문이었다. '카피'를 위해서 옷을 샀던 것. 이 디자이너는 구입한 수입 브랜드 제품의 패턴을 카피하고 디테일도 참고한 뒤 반품을 시도했고 이 과정에서 매장 매니저가 옷에 일부 '하자'를 발견해 시비가 붙었다. 결국 일반 고객이 아니라 디자이너라는 사실이 밝혀졌고 판매 대기업은 디자이너가 속한 중견의류업체를 상대로 소송까지 불사하겠다는 태세다.
디자이너들은 '시장조사'라는 명목으로 매주 백화점 매장을 돌아다닌다. 디자이너는 요즘 유행하는 트렌드를 익혀야하고 소비자들의 반응도 점검해야 하기 때문에 많은 브랜드가 모여 있는 백화점 매장을 돌아보는 게 주요 업무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카피 관행이 굳어지고 있다는 데 있다. 디자이너들은 매장에서 옷을 직접 입어보고 사진도 찍어 옷의 패턴, 디테일 등 다양한 '참고 사항'을 수집해 디자인에 활용한다.
카피를 무조건 비난할 수는 없다. 모방은 창조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우리만의 문제도 아니다. 파리 컬렉션 등 세계적인 패션쇼도 따지고 보면 디자인 카피의 진원지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잘 팔리는 제품을 카피하면서 브랜드마다 스타일이 비슷해져 맨처음 스타일을 만들어낸 브랜드의 창의성이 보호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백화점 의류 매장에 가보면 이 브랜드가 저 브랜드일 정도로 다 비슷비슷하다. 일본만 해도 다양한 컨셉트의 브랜드가 많지만 한국은 그렇지 못하다. 유행하면 따라 하기 바쁜 업계 관행이 계속되면 '패션 강국, 코리아'의 기치는 공허한 구호에 그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