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이나 대형유통업체가 이익을 내는 만큼 세금을 내는데, 무조건 수수료를 낮춰 이익을 줄이라고 요구하는 게 말이 됩니까."

최근 만난 한 대형유통업체 임원의 푸념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동반성장을 위한 것이라며 대형 유통업체들을 다각도로 압박하고 있는 데 대한 유통업체들의 솔직한 속내인 셈이다.
물론 '동반성장'이라는 명분이 앞에 있지만 공정위의 논리는 그야말로 단순하다. 대형유통업체는 대기업이고 입점업체는 중소기업인데, 함께 성장하는 '동반성장'을 위해서는 대기업이 '무조건' 양보하라는 것이다.
여기엔 이른바 '대기업은 악'이라는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편견도 녹아 있다. 그 바람에 유통 업태별로 대기업의 역할과 일률적 수수료 인하로 인한 부작용에 대한 고민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소비자 입장에서 생각을 시작해야 한다. 백화점을 찾은 소비자들은 싼 가격이 아니라 고급 브랜드의 상품과 질 좋은 서비스를 원한다. 대형마트에선 중저가이면서도 실속 있는 제품을 찾는다. 소비자에겐 다양한 유통채널이 있는 것이 가장 큰 만족을 준다.
이런 상황에서 '수수료를 낮춰 백화점 물건값을 내려야 한다'는 얘기는 소비자에겐 별로 설득력이 없다. 또 대형마트의 이익이 줄어들어 여유가 없어지면, 자체 자금으로 원단이 쌀 때 대량으로 사들여 9800원이라는 염가에 청바지를 파는 기획행사 같은 것은 앞으로 찾아보기 힘들게 된다.
문제는 그 뿐만이 아니다. 판매수수료 인하가 정부 뜻대로 된다하더라도 정작 입점업체들이 소비자가격을 낮추지 않는다면 공정위는 그때는 또 어떤 논리로 중소입점업체들을 압박할까 궁금해진다.
일률적 수수료 인하는 우량한 중소기업을 살리기 위한 정책과도 거리가 있다. 판매수수료를 인위적으로 낮춰버리면 그만큼 경쟁력이 떨어지는 입점업체들이 대형 유통시장에 진입하는 역효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시장이 형성하는 자연스러운 진입장벽을 인위적으로 낮춰 나타나는 부작용이다. 또 혜택을 입기 위해 스스로 몸집을 줄이려고 노력하는 중소기업도 나타날 수 있다.
국민의 편견에 아부하는 것, 정부로선 가장 쉬운 방법이다. 일종의 포퓰리즘(대중 영합주의)이다. 그 일선에 공정위가 서 있는 모양새다. 한참을 열변을 토하던 그 임원이 마지막으로 던진 한마디가 기억에 남는다. "무슨 사회주의도 아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