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신동빈 회장의 하지 않았어야 할 말

[기자수첩]신동빈 회장의 하지 않았어야 할 말

엄성원 기자
2015.08.13 03:51

"지주회사 전환에는 금융계열사 처리 같은 어려움이 있고 대략 7조원의 재원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는 롯데그룹 순수익 2~3년치에 해당하는 규모입니다. 연구개발과 신규채용 같은 그룹의 투자활동 위축이 우려됩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10일 대국민 사과를 통해 롯데그룹의 지배구조 개선을 약속했다. 호텔롯데 상장을 통해 일본 계열사 지분을 희석하고 지주회사 체제로 그룹 지배구조를 전환하겠다고 했다. 일부 친족과 일본 자본이 장악하고 있는 비상장사를 통한 그룹 지배, 한국법 테두리 밖에 있는 일본 지주사회사의 한국 롯데그룹 지배 등 경영권 분쟁 중에 드러난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려놓겠다는 말이다.

당연하고도 현명한 선택이다. 계열사 순환출자를 통해 총수 일가가 소수 지분으로 그룹사 전체를 호령하는 지배구조는 개선요구를 받아왔다. 자의든 타의든 롯데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지배구조 개선에 나선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늦긴 했지만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신 회장 발언 중 한 대목이 마음에 걸린다. 지주사 전환에 따르는 어려움을 말한 대목이다. 신 회장은 내부 시뮬레이션 결과 지주회사 전환에 7조원이 든다며 투자와 고용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7조원은 물론 막대한 액수다. 롯데그룹 계열사 중 매출 규모가 가장 큰 롯데쇼핑의 지난해 순이익은 5400억여원이다. 롯데쇼핑의 10년 순익을 고스란히 투입해도 모자란다.

신 회장은 지배구조 개선이 하루 이틀 안에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이런 말을 꺼냈겠지만 아쉬움이 남는다. 롯데는 지금 창사 이래 최대 위기에 직면해 있다. 국적 논란에서 시작된 국민적 반감은 불매운동이라는 실제 행동으로 번졌다.

이런 상황에서 나오는 신 회장의 한마디 한마디에는 천냥 빚이 아닌 만냥 빚을 갚을 수 있을 만한 진정성과 무게가 담겨 있어야 한다. 롯데는 지난 7일 정부 시책에 발 맞춰 청년 신규 채용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2020년 직접 고용 15만5000명 등 59만개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구체적인 계획도 제시했다. 하지만 불과 나흘 뒤에 그룹 총수인 신 회장은 지주사 전환 탓에 향후 투자와 고용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마치 마지못해서 지배구조 개선에 나선 것처럼 보일 수 있는 발언이었다. 당장 급한 불만 끌 생각이 아니라면 롯데는 더욱 신중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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