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었던 시장 살렸다"…노인들만 찾던 곳, 젊은 엄마들 북적

"죽었던 시장 살렸다"…노인들만 찾던 곳, 젊은 엄마들 북적

송지유 기자
2017.10.27 04:15

[르포]이마트 '노브랜드 상생스토어' 들어선 지 두달 만에 확 달라진 안성맞춤시장

-안성시·상인회, 올초 이마트에 SOS…"이대로 가면 망한다" 노브랜드 유치 속도

-이마트에 매장 나눠준 동네마트, 나란히 붙어 '팀플레이' 영업

-학생부터 주부, 직장인까지 젊은고객 유입…시장 주요 점포 매출 40% 늘어

지난 24일 찾은 경기 안성 이마트 노브랜드 상생스토어. 안성맞춤시장 건물 지하 1층에 들어선 이 점포는 기존 동네마트와 면적을 나눠서 쓰고 있다. /사진=홍봉진 기자
지난 24일 찾은 경기 안성 이마트 노브랜드 상생스토어. 안성맞춤시장 건물 지하 1층에 들어선 이 점포는 기존 동네마트와 면적을 나눠서 쓰고 있다. /사진=홍봉진 기자

연암 박지원의 '허생전' 속 주인공 가난한 선비 허생은 아내의 구박에 못 이겨 한양 최고 부자를 찾아가 1만냥을 빌린다. 그는 이 돈으로 제수용품인 과일을 매점매석해 큰 돈을 번다. 허생이 상업활동을 한 배경 중 한 곳이 바로 경기도 안성시장이다.

실제로 안성은 조선시대부터 유명한 상업지였다. 영남과 호남, 충청지역의 물자와 사람들이 오가는 교통 요충지였던 만큼 일찍부터 시장들이 자리를 잡았다. 한복, 속옷, 수선 등 의복 관련 점포들이 밀집한 안성맞춤시장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곳이다. 하지만 1980년대초 시장 상인들이 추진한 현대식 건물 건설사업이 장기간 지연되면서 쇠락의 길로 접어 들었다.

이 시장에서 40년째 한복점포(금성상회)를 운영하고 있는 상인회장 김순자씨는 "맞춤시장은 한창 때 그 날 번 돈을 다 세지 못하고 잠들 정도로 장사가 잘 됐던 곳"이라며 "하지만 손님들의 발길이 서서히 끊기면서 지역 주민들 사이에선 죽은상가로 불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탈출구가 보이지 않던 안성맞춤시장에 최근 젊은 손님들이 몰려들고 있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장을 보러 오는 20~30대 부부부터 교복 입은 학생들, 데이트를 즐기는 대학생까지 이곳을 찾는다. 60~70대 이상 할머니, 할아버지 손님만 찾던 이곳의 기적 같은 변화는 지난 8월초 이마트가 시장 건물 지하에 '노브랜드 상생스토어'를 열면서 시작됐다.

(위부터)김순자 안성맞춤시장 상인회장, 하정호 안성맞춤시장 화인마트 대표/사진=홍봉진 기자
(위부터)김순자 안성맞춤시장 상인회장, 하정호 안성맞춤시장 화인마트 대표/사진=홍봉진 기자

◇이마트에 매장 떼 준 동네마트…찰떡궁합 '팀플', 매출 40% 껑충=맞춤시장을 활성화하는 것은 안성시의 숙원사업이었다. 상업시설이 제 역할을 못하고 도심 슬럼화 주범으로 전락하면서 지자체의 고민거리가 된 것이다. 충남 당진·경북 구미에 앞서 문을 연 이마트 노브랜드 상생스토어를 시찰한 안성시 공무원들은 올 1월 신세계그룹에 도움을 청했다. 상생스토어 사업을 전담하는 이마트 CSR 본부 담당자들이 현장을 방문한 뒤 사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안성시와 상인회, 이마트가 머리를 맞대고 노브랜드 점포 등을 열 공간을 물색했다. 시장건물 지하 1층에서 슈퍼마켓(화인마트)을 운영해 온 하정호씨가 점포 일부를 내주는 결단을 내렸다. 100여명의 상인들도 '바꾸지 않으면 망한다'는 마음으로 힘을 보탰다. 이마트는 화인마트 종전 영업 면적 2310㎡(700평) 가운데 3분의 1인 693㎡(210평)을 임차해 매장을 꾸렸다. 대신 화인마트측이 부담하던 보증금과 임차료의 절반을 나눠낸다.

노브랜드 상생스토어 점포에서 전통시장의 주력상품인 신선식품을 비롯해 동네마트 매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국산주류·담배 등을 판매하지 않기로 약속하면서 상생 유통환경도 조성했다. 고객들이 동네마트와 노브랜드 점포를 쉽게 오갈 수 있도록 두 점포의 출입구를 마주 보게 설계했다. 24일 찾은 현장에선 실제로 노브랜드 점포를 찾은 손님들이 화인마트로 넘어가 신선식품, 주류, 담배, NB상품 등을 구입했다.

하씨는 "노브랜드 매장에선 가공식품과 생활용품을 중심으로 판매하지만 운영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사실 걱정이 많았다"며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매장 면적이 줄었는데도 매출이 40% 가까이 늘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임차료 부담이 절반으로 줄어드니 숨통이 트였다"며 "원래 직원이 12명이었는데 최근 8명을 추가로 고용해 이제 20명이 됐다"고 덧붙였다.

김상민 이마트 CSR 수석부장은 "안성 상생스토어는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선을 그었던 동네마트와 이마트의 공존 사례이자 가장 진화된 모델"이라며 "대형마트를 전통시장 장사를 망치는 공적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얼마든지 팀플레이가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한 것도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사진위 왼쪽부터)안성 노브랜드 상생스토어와 희망놀이터/사진=홍봉진 기자
(사진위 왼쪽부터)안성 노브랜드 상생스토어와 희망놀이터/사진=홍봉진 기자

◇청년상인·젊은손님 몰리니…시장 활기, 빈 점포도 주인찾아=이마트는 노브랜드 상생스토어 옆에 유아 놀이공간인 '희망 장난감 놀이터', 쇼핑 온 고객들이 쉴 수 있는 '청년상생 카페', 수유실, 보호자 쉼터 등 공간도 조성했다. 놀이터에는 레고, 승용완구 등 각종 장난감과 볼풀, 미끄럼틀 등 다양한 시설이 갖춰져 있어 젊은 엄마들에게 인기가 많다.

놀이시설에서 만난 김주연씨(가명)는 "일주일에 1~2회는 맞춤시장을 방문한다"며 "아이를 데리고 장을 보는 것이 쉽지 않은데 이곳은 마트 바로 옆에 놀이공간이 있어서 매우 유용하다"고 말했다. 그는 "친구들과 만나 쇼핑을 한 뒤 식사하고 카페도 이용한다"며 "낮에도 컴컴하고 인적이 드물었던 곳인데 노브랜드가 생긴 뒤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상인들이 하나 둘 떠나면서 비어있던 점포도 속속 새 주인을 맞고 있다. 이마트가 노브랜드 상생스토어 오픈과 함께 지자체의 청년창업을 측면 지원하면서 청년 상인들이 몰려 들고 있다. 현재 안성맞춤시장에는 카페, 분식집,호프집, 중식당, 수제버거·액세서리 매장 등을 운영하는 청년상인 점포가 10곳에 달한다. 이들 매장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등에서 입소문이 나면서 중고생부터 대학생, 회사원, 주부 등까지 고객층이 다양해졌고 매출은 매달 신기록 행진 중이다.

수입맥주와 스테이크 등을 판매하는 펍(탭하우스)을 운영 중인 청년상인 박수빈씨는 "주말에는 자리가 없어 손님들이 줄을 설 정도로 반응이 좋고 매출도 기대 이상"이라며 "시간이 지나면서 청년들이 운영하는 점포가 뿌리를 깊게 내리면 더 많은 손님들이 찾아올 것"이라고 자신했다.

청년상인 외에 일반 자영업자들까지 가세하면서 공실률도 낮아졌다. 김 상인회장은 "할머니, 할아버지만 드문드문 오가던 시장에 젊은 손님들이 찾아오고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리니 꿈만 같다"며 "노브랜드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맞춤시장 상인들이 상상도 못했던 나날이 펼쳐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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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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