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속쏙알기(5)-식품·유통]①배급시스템 무너지고 가내 생산품 장마당서 거래...공장제품보다 낫다 평가



"집에서 만든 장마당 물건들이 국가 식료품 공장 제품보다 품질이 좋고 종류도 다양합니다. 대다수 주민들은 장마당에서 먹거리를 해결합니다." 탈북자 이 모씨는 북한 주민들의 식생활과 관련, 이같이 말했다.
국가 차원의 식품배급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주민들이 민간의 가내수공업과 비공식 유통채널인 장마당에 의존하게 됐다는 것이다.
31일 정부와 탈북자 단체에 따르면, 북한내 공식적인 식품생산은 우리 농림축산식품부격인 '식료일용공업성'의 통제를 받는 중앙과 지방 공장, 각종 협동조합에서 이뤄진다. 옥수수나 보리, 콩, 밀 등 곡물을 단순 가공하는 곡산·제분공장이나 장공장, 기름공장, 술공장 등이 그것이다. 생산품은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생일과 같은 명절에 배급되거나 평시 국영상점을 통해 저렴하게 판매돼 왔다.
문제는 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기'를 거치면서 국가 주도의 식품공급망이 사실상 유명무실해 졌다는 점이다. 경제제재로 쌀과 밀가루, 사탕수수 같은 원료 수입이 크게 줄어든데다 흉년이 겹쳤고 전력난이 심화돼서다. 배급량이 급감한 가운데 그나마 소량의 생산품은 당과 군간부 몫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이후 북한 주민들은 대부분의 기초식품을 자체적으로 해결하거나 가내수공업으로 생산한 제품을 장마당에서 사서 쓴다.
현재 장마당에서는 곡물과 간장, 된장, 야채와 계란 등 기초식품과 부식, 반찬, 조리식품은 물론 빵과 과자, 사탕, 아이스크림, 맥주, 소주 등 생활 필수품 대부분이 거래된다. 최근에는 기술력이 쌓이고 자본을 투입해 설비까지 갖춘 기업형 가내수공업자까지 등장하면서 국가가 생산해 공급하던 수준을 넘어섰다는 평가다. 북한 정부는 주민의 생활과 밀접한 식품생산이나 장마당 거래에 대해서는 민심이반을 우려해 이렇다할 통제를 가하지 않는다.
장마당에는 남쪽에서는 구경하기 어려운 식품들이 많다. 북한에는 육류공급이 부족해 단백질을 보충할 수 있는 식품들이 인기인데 인조고기(콩기름을 짜고 남은 찌꺼기를 밀어 가공한 가짜고기)나 두부튀김, 개고기(단고기), 말린 메뚜기 등이 대표적이다.
탈북자 이씨는 "일반인들은 소고기나 돼지고기, 닭고기를 평시에는 구경하기 어렵다"면서 "그나마 저렴한 인조고기나 가끔 개고기같은 것들을 장마당에서 구해 먹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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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와 소주, 담배와 같은 기호품도 활발히 거래된다. 다른 탈북자 서 모씨는 "남한에는 대동강맥주가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일반 주민들은 구경하기 어렵고 대신 맥주집에서 만든 생맥주나 집에서 만든 수제맥주를 사먹는다"면서 "집에서 보리나 감자를 가지고 소규모로 맥주나 소주를 만드는 이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커피의 경우 2000년대 들어 장마당에 한국산 믹스커피인 '맥심'이 등장하자 부유한 주민들이 커피를 마시기 시작하면서 커피문화가 퍼졌다. 커피수요가 증가하자 최근 부유한 상인들이 당국의 묵인하에 중국에서 설비와 원료를 들여와 '봉지커피'(믹스커피) 공장을 세워 판매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평양 등 대도시에는 패스트푸드나 커피전문점 등 고급 외식업체도 운영된다. 싱가포르 요식업자인 패트릭 소가 2009년 문을 연 햄버거 체인 '삼태성(三台星)'이 대표적이다. 현재 매장이 30여곳에 달한다. 북에서는 햄버거를 '고기겹빵', 감자튀김(프렌치프라이)은 '감자튀기'라고 부르는데 2000년대 초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간부들에게 햄버거를 인민에게 공급하라고 지시하면서 허용됐다. 2016년에는 우크라이나 패스트푸드 업체 미스터그릴(MR.Gril)이 평양에 문을 열었고 오스트리아 사업가가 투자한 비엔나커피 전문점도 성업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전문가인 김영희 박사(탈북자)는 "장마당이 활성화되고 있지만 소득이 낮은 북한 주민들 대다수는 여전히 극심한 식료품난과 영양부족에 시달리고 있다"면서 "최근 남북간 화해무드가 조성되면서 식품관련 경협이 가장 먼저 언급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