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신의 와인Pick!] 이럴 때 이 와인 어때?

[박영신의 와인Pick!] 이럴 때 이 와인 어때?

로피시엘=박경배 기자
2026.05.07 23:53

은사님과 귀한분께 감사한 마음 전하고 싶을 때
시간이 빚은 깊이의 와인 '바롤로 세라데나리(Barolo Serradenari)'

/사진출처=필자
/사진출처=필자

은사님께 감사를 전하는 일은 늘 마음에 비해 표현이 작아 보인다. 말로 다 담기엔 그 가르침의 깊이가 너무나 깊고 선물로 대신하기엔 그 진심의 무게가 너무나 무겁기 때문이 아닐까? 그분께서 심어주신 따뜻한 마음의 씨앗이 세월이라는 거름을 먹고 자라, 이제는 타인을 대하는 시선 속에 흔들림 없는 따스함으로 자리 잡았음을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 초등학교 교실 한가운데를 지키던 무쇠 난로가 떠오른다.

쉬는 시간마다 아이들이 쌓아 올린 도시락들이 층층이 포개져 있던 그 풍경에는 늘 선생님의 분주한 손길이 더해졌다.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 차가운 밥알이 조금이라도 더 데워지 길 바랬던 아이들의 조급함 사이에서 선생님께서는 조용히 위아래의 도시락 순서를 바꿔주곤 하셨다. 가장 밑바닥, 난로의 뜨거운 온기가 직접 닿는 그 자리에 아이들의 도시락을 번갈아 갈아주며 놓아주시던 선생님의 따뜻한 마음은, 가장 낮은 곳에서 묵묵히 제자들의 마음을 데워 주시던 지극한 사랑이었다.

필자는 세월이 지날수록 더 깊이 우러나는 와인의 세계에서 다시금 그것을 발견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가치가 짙어지고 더 복합적이며 아름다운 향기를 뿜어내는 와인, 바롤로(Barolo)가 바로 그러하다. 그 중에서도 레나토 라띠(Renato Ratti)의 바롤로 세라데나리(Barolo Serradenari)는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낮은 곳에서 아이들의 차가웠을 도시락을 온기로 지켜 주시던 선생님의 마음이 세월이라는 숙성을 거쳐 완성된 고귀한 결실처럼 느껴진다. 단단했던 타닌이 숙성을 거쳐 부드럽고 깊은 풍미를 전하 듯이 선생님께 배운 삶의 태도는, 이제 내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향기가 되었다. 오늘 그 난로 위의 도시락처럼 따스했던 선생님의 마음을 담아 이 한 병의 시간을 올린다.

◆ 피에몬테의 언덕, 시간이 빚어낸 풍경

바롤로는 '와인의 왕이자 왕의 와인(King of Wines and Wine of Kings)'이라 불린다.

바롤로가 오늘날과 같은 드라이 레드 와인이 된 것은 19세기 중반의 일이다. 그 이전까지 네비올로로 만든 와인은 대부분 달콤한 스타일이었다. 변화의 계기는 사보이 왕가의 카를로 알베르토 왕과 팔레티 후작 부인 줄리에타(Juliette Colbert de Maulevrier)의 만남이었다. 프랑스 출신의 줄리에타 후작 부인은 피에몬테로 시집온 후, 보르도와 부르고뉴의 최신 양조 기술을 도입하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프랑스에서 양조 전문가를 초청했고, 네비올로를 완전 발효시켜 드라이한 레드 와인을 만드는 실험을 시작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이렇게 탄생한 현대적 바롤로는 곧 사보이 왕실의 공식 와인이 되었고, '왕의 와인'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20세기 들어 바롤로는 두 차례의 큰 변화를 겪었다. 1960-70년대에는 전통주의자들과 현대주의자들 사이에 '바롤로 전쟁'이라 불리는 양조 철학의 충돌이 있었다.

전통주의자들은 큰 슬라보니안 오크통에서 장기간 숙성하는 방식을 고수했고, 현대주의자들은 작은 프랑스산 바리크를 사용하고 숙성 기간을 단축했다. 중요한 것은 양조 방식이 아니라, 네비올로 품종과 바롤로 떼루아의 본질을 얼마나 잘 표현하느냐는 것이다. 이탈리아 피에몬테 지역에서 네비올로(Nebbiolo) 품종 100%로 만들어지는 이 와인은, 최소 3년 이상 숙성해야 출시할 수 있으며, 리제르바(Riserva)는 5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진정한 바롤로 애호가들은 10년, 20년, 심지어 30년 이상 숙성된 병을 찾는다. 바롤로는 이탈리아 북서부 피에몬테(Piedmont) 지역, 정확히는 랑게(Langhe)라 불리는 구릉지대에서 생산된다. 피에몬테는 '산기슭'이라는 뜻으로, 서쪽과 북쪽으로는 알프스 산맥이, 남쪽으로는 아펜니노 산맥이 둘러싸고 있다. 이 지형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미기후가 바롤로의 정체성을 결정하게 된다. 바롤로 DOCG 지역은 총 11개의 코무네(Comune, 마을)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중 가장 유명한 곳은 바롤로, 라 모라(La Morra), 세라룽가 달바(Serralunga d'Alba), 카스틸리오네 팔레토(Castiglione Falletto), 몬포르테 달바(Monforte d'Alba)다.

각 마을은 서로 다른 토양과 미세한 기후 차이를 가지고 있어, 같은 네비올로라도 완전히 다른 개성의 와인을 만들어낸다. 바롤로의 토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토르토니아노(Tortonian)' 토양으로, 점토질과 석회질이 섞인 회백색 마를(Marl) 토양이다. 이 토양은 라 모라와 바롤로 마을에 주로 분포하며, 여기서 자란 포도는 상대적으로 우아하고 향기로우며 일찍 마실 수 있는 와인을 만든다. 다른 하나는 '엘베치아노(Helvetian)'토양으로, 사암과 사질 점토로 이루어져 있다.

이 토양은 세라룽가와 몬포르테에 많으며, 여기서는 더 강하고 타닌이 풍부하며 오래 숙성할 수 있는 와인이 탄생한다. 이곳은 사람의 손이 수백 년에 걸쳐 빚어낸 풍경이며 세대를 거쳐 전해 내려온 땀과 경험의 결정체다. 그 포도밭은 가파른 경사면에 계단식으로 조성되어 있고, 모든 것이 남쪽을 향해 있다. 햇빛을 최대한 받기 위한 선조들의 지혜다.

◆ 네비올로 품종, 기다림의 미학

네비올로(Nebbiolo)는 이탈리아어로 안개를 뜻하는 '네비아(Nebbia)'에서 유래했다. 가을이 되면 랑게 언덕에는 짙은 안개가 끼는데, 이 안개 속에서 네비올로는 천천히 익어간다. 10월 말에서 11월 초, 다른 품종들이 모두 수확을 마쳤을 때, 네비올로만이 여전히 포도나무에 남아 마지막 햇빛을 받으며 성숙해진다.

이 품종은 재배하기 까다롭기로 악명 높다. 늦게 싹을 틔우고 늦게 익으며, 껍질은 얇아서 질병에 취약하다. 토양과 기후에 극도로 민감하여, 피에몬테를 벗어나면 그 본연의 개성을 잃어버린다. 그래서 세계 어디에서도 네비올로는 피에몬테 만큼 위대한 와인을 만들지 못한다.

하지만 제대로 익은 네비올로로 만든 바롤로는 세계에서 가장 복잡하고 우아한 레드 와인 중 하나다. 높은 산도와 강한 타닌, 그리고 풍부한 아로마가 특징이다. 장미, 제비꽃, 타르, 가죽, 트러플, 담배, 말린 허브, 체리, 자두, 이 모든 향이 하나의 와인 안에서 조화를 이룬다. 그러나 영한 네비올로는 거칠다.

타닌이 너무 강해서 입안을 오그라뜨리고, 산도가 높아 신맛이 날카롭다. 이것이 바로 바롤로가 긴 숙성을 필요로 하는 이유다. 시간이 지나면서 타닌은 부드러워지고, 산도는 와인의 구조를 지탱하는 우아한 뼈대가 되며, 과일 향은 더 복잡하고 깊은 향으로 진화한다.

◆ 레나토 라띠(Renato Ratti) 바롤로 세라데나리(Barolo Serradenari)

/사진출처=에노테카코리아
/사진출처=에노테카코리아

- Region: Italy / Piedmont / Langhe / Barolo DOCG

- Appellation: Barolo DOCG (Denominazione di Origine Controllata e Garantita)

- Grape: Nebbiolo 100%

- Soil Types: Tortonian (calcareous marl), Helvetian (sandstone)

- Aging Requirements: Minimum 38 months (including 18 months in oak), Riserva: 62 months

- Alcohol: 13-15%

- Aging Potential: 10-30+ years (vintage and producer dependent)

- Serving Temperature: 16-18°C (최소 오픈 2시간 전 디캔 팅 권장)

◆와이너리 이야기 레나토 라띠(Renato Ratti)

대대로 의사였던 가문 출신 레나토 라띠(1934-1988)는 알바 양조 학교를 선택했다. 1955년 브라질에서 10년간 베르무스를 만들며 부르고뉴의 크뤼 개념과 보르도의 가치 철학을 배웠다. 1965년 귀국 후, 아내 베아트리체('비비')와 라 모라 언덕을 본 순간 "이것이 약속의 땅이다"라며 안눈치아타 수도원 아래 마르체나스코 0.5헥타르를 구입했다.

1971년, 레나토는 바롤로 최초의 크뤼 지도를 완성했다. 170개 포도밭의 미세한 떼루아 차이를 표시한 이 지도는 2010년 MGA 시스템의 공식 기준이 되었다. 그는 양조법도 바꿨다. 침용 시간을 단축하고, 오크 숙성을 2년으로 줄이고, 병 숙성을 강조했다. 우아함, 정제미, 장수성. 1973년에는 오늘날 피에몬테 와인의 상징인 알베이사 병을 발명했다(170개 포도밭, 2010년 MGA 공식 기준).

1988년 54세 급서. 20세 아들 피에트로가 계승했고, 피에트로는 1996년부터 포도밭 확장, 2004년부터 100% 자가 포도 사용하여. 2015년, 와이너리 50주년에 라벨을 '레나토 라띠'에서 'Ratti'로 바꿨다. 두 세대의 작품임을 인정한 것이다. 아버지보다 10년 더 긴 여정 끝에 피에트로는 완성했다. 2010년 MGA 시스템을 공식 비준한 바롤로 컨소시엄 회장으로서, 아버지의 지도를 공식 기준으로 만들었다.

◆ 테이스팅 노트

Appearance: 검붉은 가넷과 벽돌 빛의 그라데이션

Nose: 첫 향은 장미와 제비꽃의 우아한 꽃 향기다. 코를 더 가까이 가져가면 타르와 가죽의 향이 피어 오르고, 그 뒤로 트러플, 담배 잎, 감초, 말린 허브의 겹겹이 쌓이 복잡한 향. 아로마는 말린 자두, 무화과, 말린 장미와 더욱 깊고 복합적인 부케를 형성. 디캔팅 후 30분이 지나면 흙 내음과 버섯 향이 더해 짐.

Palate: 입에 머금으면 높은 산도가 먼저 혀를 자극하고, 강한 타닌이 입천장 전체를 감싼다. 젊은 바롤로는 다소 거칠지만, 10년 이상 숙성된 와인은 타닌이 벨벳처럼 부드럽다. 체리와 자두의 과일 맛이 중심을 이루며, 그 주변으로 감초, 아니스, 정향, 계피의 향신료 맛이 배치된다. 중간 팔레트에서는 트러플과 가죽의 맛이 느껴지고, 미네랄 감이 와인에 깊이를 더한다. 좋은 밸런스를 갖고있음.

Finish: 여운은 놀라울 정도로 길다. 삼킨 후에도 1분 이상 입안에서 맛과 향이 계속 이어지고 처음에는 과일의 단맛이 느껴지다가, 점차 흙과 미네랄의 맛으로 변하며, 마지막에는 제비꽃의 향기가 되살아남.

비건 마요 키위 샐러드/사진출처=필자
비건 마요 키위 샐러드/사진출처=필자

◆ 푸드 페어링

- 일반 페어링 : 양고기 구이, 소갈비 찜, 고기 만두, 버섯 리조또, 육회,불고기,잡채

- 비건 페어링: 트러플 오일 파스타, 소스 얹은 버섯 가지 구이, 비건마요 키위샐러드

박영신 와인칼럼니스트
박영신 와인칼럼니스트

-박영신 와인칼럼니스트-

'바롤로가 세월을 거쳐 우아함을 완성하 듯이 좋은 스승은 지식만 주입하기보다 제자의 시간이 무르익기를 묵묵히 기다려 주는 존재이다.'

현 한국와인소비자협회 회장으로, 경희대학교에서 와인 소믈리에 석사 및 조리외식경영학 박사를 수료했다. 와인바와 전문 숍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소비자 니즈를 정확히 읽어내는 전문가로 평가받는다. 와인 소비자 행동 관련 논문을 발표하고 국내 주요 와인 대회 심사위원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칼럼니스트이자 협회장으로서 생산자·유통자·소비자를 잇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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