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 도는 흰우유, 비싸게 사야"…24년 묵은 규제에 발목 잡혔다

"남아 도는 흰우유, 비싸게 사야"…24년 묵은 규제에 발목 잡혔다

차현아 기자, 이병권 기자
2026.07.0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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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남는우유 35만톤, 유통기한 넘긴 규제 (上)

[편집자주] 흰 우유 소비가 지속해서 감소하면서 유업계와 낙농가가 사상 유례없는 구조적 위기에 직면했다. 현재 국내에서 생산되는 원유의 89%는 흰 우유로만 쓰도록 묶여있는 규제(원유 쿼터제) 탓이다. 수요가 줄어도 낙농가는 원유를 계속 생산하고 유업체는 이를 구매해야 한다. 업계에선 이 같은 구조를 그대로 두는 건 폭탄돌리기와 같다고 입을 모은다. 원유 물량 협상 개막을 맞아 대전환의 기로에 선 낙농 생태계의 현실을 짚어보고 실효성 있는 산업 재설계 방안을 살펴본다.
"우유가 남아돈다"…2년간 원유 공급 10% 이상 감축

-과잉물량 산정 기준 평행선…"규제 구조적 재설계 절실"

[인천공항=뉴시스] 이영환 기자 =  2026.03.23. 20hwan@newsis.com /사진=이영환
[인천공항=뉴시스] 이영환 기자 = 2026.03.23. [email protected] /사진=이영환

국내 유(乳)업계와 낙농가가 내년부터 2년간 남아도는 음용유(흰 우유) 10% 이상 감축할 전망이다. 우유 소비 감소와 수입산 무관세 공세로 넘치는 흰 우유 재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오후 세종특별자치시에서 낙농진흥회 회의실에서 낙농진흥회 측과 생산자(낙농가) 대표 3인, 수요자 측 대표 3인(매일유업, 남양유업, 유가공협회)이 참석한 원유 용도별 물량 조정을 위한 소위원회 첫 회의가 열렸다. 향후 2년간 유업계가 사들일 흰 우유 물량을 얼마나 줄일지 협상에 착수한 것이다.

이날 양측은 현재 시장 상황이 음용유 물량을 줄여야 하는 '과잉 1구간(과잉률 5% 초과)'에 해당한다는 점에는 공감대를 모았다. 과잉 1구간에선 과잉 물량의 10~30%를 대상으로 실제 줄일 양을 협상으로 정한다.

다만 감축의 출발점이 되는 과잉 물량을 구체적으로 얼마로 볼 것인지를 두고 양측의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린 것으로 전해졌다. 수요자(유업계) 측은 운영 규정상 제도에 정해진 음용유 쿼터(88.5%, 194만1000톤)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과잉 물량은 14만4000톤(과잉률 8.0%)이다.

낙농가 측은 제도 도입 후 실제 구매 실적을 적용한 전례가 있다는 점을 들어 구매량을 기준으로 산정해야 한다고 맞선다. 낙농가 주장에 따라 지난해 음용유 구매량이었던 189만톤을 기준으로 하면 과잉 물량은 9만3000톤(과잉률 5.2%)으로 대폭 줄어든다. 양측의 산정 기준에 따른 최종 감축 규모 차이는 최대 약 1만5000톤까지 벌어진다.

앞서 2024년 협상에서는 양측 입장차로 14차례 마라톤 회의 끝에 두 달 여 만에 타결된 만큼 이번 협상도 장기전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의무 쿼터제 등 과거 기준의 공급 규제를 수입산과 경쟁 가능한 구조로 재설계하고 규정을 명확히하는 제도 보완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값싼 수입우유 밀려오는데...24년 묵은 원유 쿼터제 '폭탄'

-유업계 "분유 전환 적자 누적" vs 낙농가 "수입산 대체로 자급률 붕괴"

[서울=뉴시스] 이영환 기자 =  2026.03.23. 20hwan@newsis.com /사진=이영환
[서울=뉴시스] 이영환 기자 = 2026.03.23. [email protected] /사진=이영환

국내 흰 우유 소비 감소와 수입산의 무관세 공세로 유업계가 전례 없는 위기에 직면한 가운데 공급과 가격을 옥죄는 원유 거래 규제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공유와 음용유 물량을 몇 톤 조정할지를 두고 매번 다툴 것이 아니라 시장 상황에 맞는 제도 개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매년 갈등이 되풀이되는 원유 거래 구조의 뿌리에는 24년간 이어져 온 규제 틀이 자리 잡고 있다. 현행 원유 배분 구조의 핵심은 2002년 도입된 원유 쿼터제(최저 매입량 보장제)와 2013년 원유가격연동제, 2023년 용도별 차등가격제다. 각각의 제도에 따라 낙농가 소득 보호를 위해 유업계가 구매해야 하는 양이 정해지며 원유 가격은 생산비와 연동하되 용도에 따라 나눠(쿼터) 값을 달리 매기게 된다. 이 구조에서는 농가와 맺은 계약 쿼터만큼 원유를 정해진 가격에 사줘야 하므로 유업계가 흰 우유를 가공유보다 더 많이, 더 비싸게 구매해야 한다. 소비 감소가 생산 현장에 즉각 반영되지 못하는 모순이 발생하는 배경이다.

문제는 전체 원유 쿼터 219만3000톤 중 88.5%(194만1000톤)가 음용유에 할당돼있다는 점이다. 흰 우유 소비는 약 40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주저앉았는데 여전히 전체 쿼터의 대부분이 음용유에 배정되어 있어 수요가 늘어나는 가공유(5%) 쿼터에 원유를 돌릴 길이 마땅치 않다.

또 계약 기준 쿼터는 실제 원유 생산량과도 괴리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 원유 생산량은 젖소 품종 개량과 사육 규모 대형화 등의 영향으로 전년 대비 0.4% 증가한 약 195만톤을 기록했다. 매일 원유를 짜내야 하는 젖소의 신체적 특성이 더해져 소비 감소라는 시장 상황이 생산 현장의 물량 조정에 즉각 반영되기 어려운 구조다.

유업계의 구매 의무 원유 물량/그래픽=윤선정
유업계의 구매 의무 원유 물량/그래픽=윤선정

유업계는 수요 감소로 남아도는 흰 우유를 분유로 가공해 보관하는 임시방편을 쓰고 있지만 이마저도 수익성이 낮다. 국산 탈지분유 제조원가는 ㎏당 1만3000~1만4000원 수준으로 수입산(4500~5000원)의 3배가 넘기 때문이다. 가격 경쟁력이 없는 국산 분유는 고스란히 재고로 쌓이거나 손실을 감수하고 소진해야 하는 구조다. '흰 우유 소비 감소→잉여 원유 증가→분유 전환→경쟁력 악화→손실 확대'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있다는 것이다. 낙농진흥회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국내 분유 재고량은 1만1300톤이다. 설상가상으로 오는 7월 유럽산 멸균유 무관세 전환 등 수입산의 B2B(기업 간 거래) 시장 공세까지 더해지면서 유업계의 재고 위기는 한계에 직면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반면 낙농가는 원유가 남아도는 책임이 농가가 아닌 유업계에 있다며 정면 반박한다. 한국낙농육우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유업계가 실제 사들인 흰 우유는 제도상 사들여야 하는 쿼터로 규정된 88.5%에 못 미치는 81.2%다. 유업체가 사야 하는 물량을 임의로 줄이고 수입 물량을 늘린 것이 수급 불균형의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전체 낙농가의 13.7%(834호)가 폐업할 만큼 농가 경영 상황도 악화되고 있다. 이승호 낙농육우협회 회장은 "원유 시장의 독점적 지위를 가진 유업체들이 국산 자급률 붕괴(지난해 45.8%)를 주도해 놓고 도리어 농가에 물량 감축을 압박하는 것은 시장 지배력 남용이자 도덕적 해이"라고 비판했다.

협회 측은 대안으로 △늘어난 가공용 원유에 대한 예산 및 대책 마련 △경영위기 농가를 위한 정책자금·상호금융자금 상환 기한 3년 이상 일괄 연장 및 이자 감면 △고령·소규모 농가 대상 현실적인 폐업 보상 대책 마련 △유업체의 임의적 물량 감축 행위에 대한 엄정 대응 등을 요구했다.

업계 관계자는 "소비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는 의무 쿼터제 등 공급 규제의 모순이 결국 유업계의 적자와 낙농가의 경영 위기라는 결과를 낳고 있다"며 "규제 완화와 함께 가공용 원유에 대한 예산 지원, 국산 원유 사용 사업장에 대한 세액공제 등 정부 차원의 정책적 뒷받침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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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현아 기자

정보미디어과학부, 정치부를 거쳐 현재 산업2부에서 식품기업, 중소기업 등을 담당합니다. 빠르게 변하는 산업 현장에서, 경제와 정책, 그리고 사람의 이야기가 교차하는 순간을 기사로 포착하고자 합니다.

이병권 기자

머니투데이 금융부를 거쳐 지금은 산업2부를 출입하고 있습니다. 우리 생활과 가까운 기업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제보는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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