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민주화'를 두고 말이 많다. 정체불명이라는 주장부터 헌법의 기본 이념을 선언한 전문(前文)의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가 곧 경제민주화를 의미한다는 주장까지 매우 다양하다. 헌법의 특정 단어가 이리 논란이 많다면 작지 않은 문제이다. 국민의 기본권을 규정하는 헌법은 어느 누구나 이해에 어려움이 없어야 할 것이다. 사실 경제민주화라는 용어는 경제학에서나 일상적으로나 거의 사용되지 않는 단어이어서 그 유래가 궁금해진다.
경제민주화는 1948년 근로자 보호와 토지개혁과 관련하여 시작되었지만 419혁명 직후 부정부패 해소와 중소기업 보호(1960년)와 관련해 사용된 것을 제외하곤 상당히 뜸했었다. 이후 경제민주화가 널리 회자된 것은 1986~89년경으로 모든 이해집단이 정부주도와 불균형 성장 전략에서의 탈피를 요구하며 경제민주화를 요청했고, 결국 헌법에도 자리를 잡았다.
경제민주화는 외환위기 이후 다시 부상하는데 기업지배구조 개선이 주된 주제였다. 가장최근의 논의는 익히 아는 바이다. 오랫동안 사용된 용어이긴 하지만 역사조차도 그 의미를 파악하는데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나라 밖은 어떠한가. 일부에서는 독일 사회민주당의 1989년 베를린 강령과 산업민주주의 논의에서 어원을 찾고 있으나 그 의미가 지나치게 협소하다. 산업민주주의는 근로자의 경영참여와 감시를 의미하며 많은 나라에서 널리 사용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산업민주주의는 1928년부터 등장해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이웃 일본은 어떤가. 경제민주화라는 단어는 생각보다 일본에서 자주 사용된다. 하지만 일본에서도 경제민주화는 일상적 용어는 아니고 일본 역사의 특정 시점에서 강제되었던 경제정책을 지칭할 때 사용된다. 바로 2차세계대전 종전 직후 맥아더 사령부가 헌법 개정과 더불어 일본 정부에 요구했던 5대 개혁 중 하나가 바로 경제민주화였고, 미국의 요구사항은 재벌해체, 농지개혁 그리고 근로자 권리 옹호와 노동조합 육성의 3가지였다.
당시 미국이 일본에 요구했던 경제민주화는 '비군사화' '민주주의 세력의 조장' '경제기구의 민주화'라고도 불렸는데 이러한 명칭에서 경제민주화의 목표가 무엇이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미국의 '항복 후 미국의 초기대일방침(1945년 9월 6일)'에서도 잘 드러나듯이 군국주의 세력의 경제적 기반을 해체하고 농민과 근로자를 '민주주의 세력으로 양성'하여 군국주의의 부활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한마디로 일본의 경제 민주화는 '경제적 기반의 조정을 통한 민주주의 세력의 확대'라고 요약할 수 있다.
주목할 점은 1948년 우리나라에서 처음 경제민주화라는 단어가 사용했을 때 관련된 내용이 근로자 보호와 토지개혁이었다는 점이다. 일본에 강제되었던 것 중 재벌해체만 빠져있다. 이후의 우리의 사정은 '강남의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표현 그대로이다. 일본에서는 자취를 감춘 경제민주화가 우리나라에서는 무럭무럭 자라 오늘에 이르렀다.
우리나라의 경제성장 과정에서 지금처럼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할 필요성이 국민들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공감되는 경우는 없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이런 목적이라면 '국민(경제)의 균형 있는 성장'을 의미하는 '경제발전'이 더 적합하다. 경제민주화와 관련되는 헌법상의 모든 표현과 우리의 역사를 담기에 충분하고, 국제적으로나 학술적으로나 일상적으로나 그 의미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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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지금의 경제현실을 이해하고 정책대안을 마련하는데 '경제발전'보다 더 적합한 단어를 찾기 어렵다. '경제민주화'를 '경제발전'으로 바꿔 씀이 마땅하고, 헌법의 '경제민주화'라는 표현도 '경제발전'으로 바꾸기를 기대한다.